기록에 진심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하는 일도 기록으로 남겼다. 소위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능(陵)을 조성하게 된 경위와 전말 또 그에 따르는 의식과 절차가 모두 들어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는 모두 28종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선조 33년인 1600년에 선조의 비(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능을 지금의 동구릉(東九陵)에 있는 목릉(穆陵) 구역에 조성한 기록인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이다.
왕릉의 조성은 국상(國喪) 직후부터 임시기관인 산릉도감이 설치되어 담당하게 된다. 산릉도감은 토목과 건축 공사를 비롯하여 각종 석물의 제작과 설치, 시신의 매장, 묘역 주변 환경 정리에 이르기까지 왕릉 조성에 관계된 모든 일을 총괄하였다. 왕릉 공사에는 약 5개월에서 7개월의 기간이 소요되고, 동원되는 인원은 많을 때는 15,000명이 넘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통하여 자연 및 우주와의 통일이라는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자주적 장례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에 따라 세워진 왕릉들은 유교적 철학과 풍수지리의 원리를 적용하여 자연경관을 유지하면서도 경건한 장소로 조성되었다.
왕릉의 장소로는 기본적으로 풍수적 길지(吉地) 곧,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되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땅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또한 신성하고도 경건한 장소로서의 품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변의 민가나 시설물들로부터 격리되고 보호될 수 있는 지형이어야 했다. 아울러 왕의 참배 때 드는 비용과 백성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한성을 중심으로 4킬로미터 밖 40킬로미터 이내의 장소라야 했다.
조선왕릉(朝鮮王陵)은 총 42기에 달한다. 이 가운데 조선 개국 초기에 조성되어 현재 북한 개성에 자리한 태조의 왕비 신의왕후의 능인 제릉(齊陵)과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인 후릉(厚陵)의 2기를 제외한 40기의 왕릉이 서울 시내와 근교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왕조를 이끈 왕과 왕비의 무덤이 이처럼 고스란히 보존되고 관리되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조선 왕릉이 유일하다고 한다. 남한의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문화재연구소, 위대한 문화유산(문화재청),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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