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볕에 취한 것일까? 힘든 고행 길의 여독 탓일까?
웅크려 앉아 두 무릎위에 머리를 올린 모습이 남 보기에는 불편한 듯 보여도 정작 스님은 달고도 깊은 잠에 빠져있을 듯하다. 수행하는 스님이니 속세의 중생들과는 다른 뭔가 더 철학적인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운몽(九雲夢)의 주인공 성진(性眞)이나 환단지몽(邯鄲之夢)의 노생(盧生)과 여동빈처럼 인생의 부귀영화가 한낱 허황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중일까?
어릴 때와 군복무 시절에 햇볕에 데워진 따뜻한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가 저도 모르게 들던 잠은 꿀맛이었다. 밖에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에 장작불 지핀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등을 지지며 자는 잠은 몸을 개운하게 만들고, 더운 여름날 솔솔 부는 바람맞으며 평상에서 자는 잠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시골에 내려온 뒤부터 생긴 낮잠 습관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낮잠을 자다 깨어나면 순간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뭔가 깊은 꿈을 꾸고 나면 더욱 그런 듯하다. 장자(莊子)가 호접몽(胡蝶夢)을 꾸고는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도 이런 몽롱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남송(南宋)의 유학자였던 나대경이 지은 <산거(山居)>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에는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솔 그림자 들쑥날쑥한데
새 소리 위 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
비록 시 구절만큼의 아취는 없더라도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은 시골생활애서 얻은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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