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년 9월에 규장각(奎章閣) 건물 공사가 끝났다. 정조가 3월에 즉위하자마자 창덕궁의 북원(北苑)에 터를 잡아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지으라는 명을 내린 결과였다. 이 당시의 규장각 건물은 위는 다락이고 아래는 툇마루 형태였다.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 유교(遺敎) 등 어제(御製)를 보존, 관리하기 위한 건물이었다. 조선의 관직 설치는 송나라 제도를 따른 것으로, 홍문관은 송나라의 집현원(集賢院)을, 예문관은 학사원(學士院)을, 춘추관은 국사원(國史院)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송나라에서 왕들의 어제를 보관하는 용도각(龍圖閣)이나 천장각(天章閣)과 같은 제도가 조선에는 없었다. 세조 때에 일시 설치되었다가 폐지되었고, 숙종 때에 다시 실행하려 하였으나 왕의 권위를 절대화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한 신하들이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