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8
나귀와 관련된 그림 중에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그림이 있다.
김시(金禔, 1524 ~ 1593)의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이다.
넓은 화면에 동자와 나귀가 중심인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을 보면 ‘부벽준법에 의한 바위의 묘사와
춤추는 듯이 구부러져 올라간 노송(老松)이 눈에 띄며, 동자가 꾀부리는 나귀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 장면이
실감 있다. 버티는 나귀와 끌어당기는 동자의 모습이 생생하고 박진감 있어, 작가의 뛰어난 회화력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대각선 구도로 그린 절파(浙派) 화풍의 그림으로서는 김시의 대표작이고, 한국의
절파화풍의 효시’라고 되어 있다1.
그림의 미술사적, 회화적 가치야 어떻든 간에 볼 때마다 작가는 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 나귀를 끌어당기느라 애쓰는 동자와 버티는 나귀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리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다 동자가 나귀를 개울너머로 끌고 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이 그림이 ‘다리 건너기’의 상징성을
갖는 그림임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개울 왼쪽은 속세이고 오른쪽은 선계(仙界)나 어쩌면 몽유도원일 수도 있다. 동자는 신선이거나
고사(高士)이고 나귀는 우매한 백성이나 인물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림이 달라보였다.
김시가 25살 때인 1548년에 그린 그림으로 보물 제783호이다.
문인화는 사생(寫生)이 아닌 사의(寫意)를 그리고, 보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 사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경우에서 보듯 고사(古事)와 고시(古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작가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의에 대한 공감이 없으면 그림에서 얻게 되는 감동도 반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귀와 관련된 희한한 그림이 또 하나 있다.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의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라는 그림이다. 타(墮)는 ‘떨어질 타’이니 진단이 나귀에서 떨어지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공재(恭齋) 윤두서는 윤선도(尹善道, 1587 ~ 1671 )의 증손이자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골수 남인
집안 해남윤씨의 종손으로 서인이 세력을 잡고 있던 시절이라 벼슬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고 선비화가로 유명해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재로 불린 인물이다.
그런 분이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그림을 그렸을까? 더 놀라운 것은 화면 상단에 있는 글은 숙종임금이
그림을 감상하고 덧붙인 시(詩)라는 사실이다.
이 그림은 중국 당말(唐末)에서 송초(宋初)까지 살았던 희의선생(希夷先生) 진단(871 ~ 989)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북송(北宋) 시기의 역학자(易學者)이자 도사(道士)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여러 왕조가
바뀌고 새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참된 군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항상 얼굴을 찌푸렸는데, 어느 날 흰 나귀를
타고 하남성 개봉으로 가던 중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너무나 좋아하다가
그만 나귀에서 떨어졌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천하가 이제 안정되리라"라고 외쳤는데, 이 순간을 표현한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희이선생(希夷先生)이란 호는 송 태종(太宗)이 그를 접견하면서 하사한 것이다. 태평성대를 바라는
군주와 백성의 마음을 담은 이 그림에 숙종은 이렇게 글을 적었다.
希夷何事忽鞍徙 非醉非眠別有喜
夾馬徵祥眞主出 從今天下可無悝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임금에게 보이는 그림이이어서인지 윤두서는 비싼 청록 물감을 써서 화사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그림에 담았다.
- 두산백과, 역대서화가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