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 1
금강산을 부르는 이름은 1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 산 중에 이처럼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산은 없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새싹이 트는 봄은 금강산이었다가 여름에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蓬萊山)이 되고, 단풍이 온 산을 붉게 물드는 가을에는풍악산(楓嶽山). 차가운 암봉
(巖峰)들이 뼈다귀처럼 우뚝 서서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장관을 이루는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 된다.
이처럼 철에 따라 다르게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삼국시대에는 그저 ‘풍악’이라고 불리다가 통일신라와 발해 때는 상악(霜岳)으로, 16세기에는 신선 사상에서
말하는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인 봉래(蓬萊), 또는 그저 신선이 사는 산이라는 의미의 선산(仙山)으로도
불렸다 한다. 금강(金剛)은 불교경전「화엄경」에서 빌려온 이름이고, 열반산(涅槃山), 중향성(衆香城),
기달산(怾怛山) 등도 불교에 연원을 둔 이름들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은 이 금강산을 대표하는 화가라 할 만큼 금강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정선은 36세 때인 1711년 처음 금강산을 방문하여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岳圖帖)》을 남겼고 1712년과
1747년에 또 다시 금강산을 방문하여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남겼다. 1712년의 금강산 여행은 금강산
입구 마을인 금화현감으로 있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 ~ 1751)의 초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정선과 이병연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 ~ 1722)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인연을 시작으로 평생
지기로 지낸 사이다. 정선은 이때 금강산 그림 21폭을 그려 이병연에게 선물하였다. 스승 김창흡이 이 그림에
제화시를 썼고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화첩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알려지게 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