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1 - 수령의 임명은 사사로운 은혜가 아니다.

從心所欲 2021. 3. 9. 05:34

[김홍도필풍속도병풍(金弘道筆風俗圖屛風) 일명 김홍도필 행려풍속도 8폭 中 3, 1795년, 지본담채, 병풍 각 폭 : 142 x 38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3조 사조(辭朝) 3.

전관(銓官)에게 들러 하직 인사를 할 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歷辭銓官 不可作感謝語)

▶사조(辭朝) : 관직에 새로 임명된 관원이 부임하기에 앞서 임금에게 사은숙배하고 하직하는 일.

 

전관(銓官)은 국가를 위하여 사람을 뽑아 썼으니 사은(私恩)을 끌어대서는 안 될 것이요, 수령은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었으니 사은으로 마음속에 품어서는 안 된다. 한자리에서 상대하더라도 말이 주의(注擬)에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니, 전관이 만약 스스로 그 말을 꺼내거든 다만,

“명공(明公)이 변변치 못한 사람을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일을 그르쳐 훗날에 명공께 누를 끼칠까 매우 두렵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전관(銓官) :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 딸려 문무관(文武官)의 전형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문관과 무관의 인사행정을 맡아보던 이조와 병조를 전조(銓曹)라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특히 전랑(銓郞)이라 불리던 이조의 정5품 정랑(正郞)과 정6품 좌랑(佐郞)은 내외 관원을 천거하고 전형(銓衡)하는 데에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사은(私恩) : 개인(個人)끼리 사사(私事)로이 입은 은혜(恩惠)

▶주의(注擬) : 관원을 임명할 때, 이조와 병조에서 각각 후보자를 선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일.

 

지금 무신으로서 수령이 되어 나가는 자는 전관의 집을 두루 돌아 하직할 때에 반드시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를 묻고, 전관이 짐짓 하찮은 물건을 구하는 척하면 수령은 다시 후한 것으로써 바치기를 청하며, 그가 부임하게 되면 공공연히 뇌물을 실어다 바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니, 염치의 도(道)가 없어짐이 곧 이에 이르렀다. 선배들에게는 이러한 풍습이 없었다.

 

참의(參議) 김변광(金汴光)이 전직 기랑(騎郞)으로서 물러나 시골에 궁하게 살면서 벼슬을 구하지 않았는데, 윤모(尹某)가 삼전(三銓)이 되자 그를 용강 현령(龍岡縣令)으로 차임(差任)하였다. 그 후에 윤씨가 딸의 혼인이 있자 말馬〕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였다. 김변광이 답서를 보냈다.

“가난하면 서로 도와주는 것은 사람으로서 떳떳이 해야 할 일이나, 다만 혐의 받을 만한 경우에는 군자로서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公)과는 전에는 서로 사귀던 사이가 아니었으며, 후에는 천거 발탁해 준 힘을 입었으니, 비록 명분 있는 선물이요 재물을 취하는 일이 아니겠지만, 모르는 자들은 반드시 말을 삼을 것입니다. 변변치 못한 이 사람이 수십 년 스스로 지켜온 바를 하루아침에 잃게 된다면, 어찌 청덕(淸德)에 누가 되고 아름다운 명예에 손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심부름 온 사람을 헛되이 돌려보내니, 도리어 부끄럽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김변광(金汴光) : 1694년 ~ 미상. 1723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교에 임명되었고 그 뒤 병조정랑과 용강현령을 지내고, 영조 때인 1765년에는 공조참의에 올랐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과 경전을 외며 자기수양에 진력하였으며 사후인 1796년에 청백리에 올랐다. 참의(參議)는 육조(六曹)의 정3품의 관직.

▶전직 기랑(騎郞) : 김변광이 병조(兵曹)정랑을 역임했음을 가리킴.

▶삼전(三銓) : 이조참의(吏曹參議)의 별칭. 이조(吏曹)에서 그 서열이 판서(判書)와 참판(參判)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이조에서 문관의 선임(選任)을 맡았다.

▶차임(差任) : 3품(三品) 이하의 벼슬아치를 임명하던 일.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