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산재망성도(山齋望星圖)

從心所欲 2021. 6. 18. 11:33

‘산속의 서재(書齋)에서 별을 보다.’

말만 들어도 운치가 가득한 풍경이 상상된다. 조선 후기의 화가 이방운(李昉運, 1761 ~ 1815 이후)이 그린 <산재망성도(山齋望星圖)>이다.

 

[이방운 <산재망성도(山齋望星圖)>, 지본수묵, 28.6 x 41.4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은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좌씨 별장에서의 밤 연회[夜宴左氏莊]>라는 시를 소재로 한 시의도(詩意圖)이다. 두보의 시는 화폭 왼쪽에 적혀있다.

 

風林纖月落 바람 부는 숲에 초승달 내려앉고

衣露淨琴張 옷자락이 이슬에 젖는데 조용히 거문고를 타네.

暗水流花徑 어둠속에 시냇물은 꽃길 따라 흐르고

春星帶草堂 봄 하늘 별들은 초가집을 둘러쳤네.

檢書燒燭短 책을 뒤적이다보니 촛불은 타서 짧아지고

看劒引杯長 칼 이야기 하느라 술자리가 길어지네.

詩罷聞吳詠 시 짓기 마치고 오(吳)나라 소리로 읊는 것 들으니

扁舟意不忘 일엽편주 그 뜻을 잊지 못하노라.

 

이 날의 야연(夜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밤 파티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마시는 대신, 거문고를 타고 책을 뒤적이다가 오래된 검에 대해 얘기하고 간간이 술로 목을 축이면서 흥이 오르면 시를 읊는다. 

그림 속 인물은 단 두 사람뿐이다. 연회(宴會)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출하다. 어쩌면 두보도 백거이(白居易)와 같은 마음으로 연회를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백거이의 <북창삼우(北窓三友)>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今日北窓下 오늘도 북창아래 앉아

自問何所爲 뭘 할까 스스로 묻네.

欣然得三友 기분 좋은 벗 셋을 얻었나니

三友者爲誰 그 세 벗이 누구인가.

琴罷輒擧酒 거문고가 파하면 술을 들고

酒罷輒吟施 술이 파하면 시를 읊으며

三友遞相引 세 벗이 번갈아 서로 이끄니

循環無已時 돌고 도는 것이 그치질 않네.

 

여기서 북창(北窓)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북쪽 창이라는 의미보다 선비의 서재를 뜻한다. 선비가 거문고와 술, 시를 친구 삼아 연회를 즐기는 모습이다.

두보의 <야연좌씨장>의 시에도 그런 벗들은 많다. 바람과 초승달과 거문고, 시냇물, 별, 책, 검, 시가 있다. 과연 연회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손님들이 있는 셈이다.

 

이방운이 그린 <산재망성도(山齋望星圖)> 속에는 지금 봄바람이 불고 있다. 나뭇가지와 잎이 모두 왼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산 속의 서재 앞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하늘에는 조각달과 북두칠성으로 보이는 별이 떠있다.

친한 벗과 더불어 서로 관심사를 얘기하다가 술 한 모금을 입에 담고는 하늘에 걸린 달과 별을 바라보는 이 흥취가 떠들썩한 밤 파티보다 못 할 것도 없을 듯하다.

 

 

 

참고 :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