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 해산첩(海山帖) 4
옥류동(玉流洞)은 외금강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도중의 구간을 이르는데, 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50m 되는 옥류폭포와 넓이가 약 600㎡에 이르는 옥류담이 있다. 비봉폭(飛鳳瀑)은 옥류동의 연주담과 무봉폭포 사이에 있는 폭포로서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이다.
두 그림은 모두 외금강의 구룡폭포(九龍瀑布)를 그린 것이다. 오른쪽 그림에는 ‘웅덩이 옆에서 그렸으니 가까이서 그 세(勢)를 본 것’이라 했고, 왼쪽 그림에는 ‘폭포 동쪽 반석에 앉아 그 세(勢)를 마주 본 것’이라 적었다.
구룡폭포는 너비가 약 4m이고 높이는 약 74m로, 일명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 개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정선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총석정(叢石亭) 그림들은 바다에 솟아 있는 돌기둥[叢石], 그 중에서도 사선봉(四仙峯)과 총석정에만 초점이 맞춰지는데 비하여 정수영은 주변 경관까지 그려 넣었다.
정수영은 그림의 제발(題跋)에
“추지령에서 몇 리를 가면서 봉우리 서너 곳이 바라보이는데, 꼭대기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마주 서 있는 것은 바다의 문과 같다.
이 일대는 기다란 산봉우리들이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가다가 우뚝 솟아서 바다로 들어갔다. 둥그렇게 솟아 있는데 그 위에 정자가 있다. 정자 못 미쳐 1리쯤 되는 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을 대강 그렸다.“고 했다.
그림의 제발은 “입석포(立石浦)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거슬러 올라갔다. 이 날에 풍랑(風浪)이 일어서 배에서 두려움을 느껴 5리쯤 가다가 해금강에서 배를 댔다. 돌 봉우리가 우뚝 수십 길이 될 만큼 솟아올라 있는데 이를 가리켜 군옥대(群玉臺)라 한다”로 시작된다.
풍랑에 놀라서 그랬는지 그림은 해금강 군옥대(群玉臺) 모습은 작게 그리고 험한 파도에 더 힘을 쏟은 느낌이다. 수십 길이 된다는 돌 봉우리들보다 몇 배나 높아 보이는 바다 물결은 마치 쓰나미라도 몰려오는 것처럼 거세 보인다.
「해산첩」의 마지막 그림인 〈옹천원조(甕遷遠眺)는 독벼랑이라 불리는 옹천(甕遷)을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에 바로 접하여 있는 절벽의 좁고 위험한 길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옹천의 특색이 이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옹천(甕遷)이라는 바위절벽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굳이 왜 바다에 돌출되어 있는 이 바위의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리적 특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정수영의 「해산첩」그림들은 경물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고 그 경물을 보았을 때의 느낌 같은 정서적 요소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어떤 경물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할 때에는 그 경물을 대할 때의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어서였겠지만, 정수영의 그림에서는 경물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느낌들을 받기가 힘들다. 지리학자의 가통을 이어받은 정수영에게 그림은 감흥을 위한 것이 아닌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삼일호는 둘레가 무려 6km에 가까운 넓이의 호수다. 그러나 정수영의 <삼일호(三日湖)>는 호수라기보다는 어느 정원의 연못처럼 느껴진다. 같은 구도로 그려진 김홍도의 <삼일포(三日浦)>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지고, 심사정의 <삼일포>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곳의 그림처럼 보인다.
같은 진경산수라도 그림을 그림 되게 하려는 그림과 사실적 기록이 목적인 그림에는 이렇듯 차이가 있다.
참고 및 인용 : 해산첩(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북한지리정보(2004, CNC 북한학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