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정수영 해산첩(海山帖) 4

從心所欲 2021. 7. 4. 10:14

[정수영 「해산첩」 17면 오른쪽 <옥류동(玉流洞)>, 지본담채, 33.8 x 30.8cm, 국립중앙박물관]

 

[정수영 「해산첩」 17면 왼쪽 <비봉폭(飛鳳瀑)>, 지본담채, 33.8 x 30.8cm, 국립중앙박물관]

 

옥류동(玉流洞)은 외금강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도중의 구간을 이르는데, 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50m 되는 옥류폭포와 넓이가 약 600㎡에 이르는 옥류담이 있다. 비봉폭(飛鳳瀑)은 옥류동의 연주담과 무봉폭포 사이에 있는 폭포로서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이다.

 

[정수영 「해산첩」 18면 오른쪽 <구룡폭(九龍瀑)>, 지본담채, 33.8 x 30.8cm, 국립중앙박물관]

 

[정수영 「해산첩」 18면 왼쪽 <구룡폭(九龍瀑)>, 지본담채, 33.8 x 30.8cm, 국립중앙박물관]

 

두 그림은 모두 외금강의 구룡폭포(九龍瀑布)를 그린 것이다. 오른쪽 그림에는 ‘웅덩이 옆에서 그렸으니 가까이서 그 세(勢)를 본 것’이라 했고, 왼쪽 그림에는 ‘폭포 동쪽 반석에 앉아 그 세(勢)를 마주 본 것’이라 적었다.

구룡폭포는 너비가 약 4m이고 높이는 약 74m로, 일명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 개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정수영 「해산첩」<총석정(叢石亭)>, 지본담채, 37.2 x 61.9cm,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총석정(叢石亭) 그림들은 바다에 솟아 있는 돌기둥[叢石], 그 중에서도 사선봉(四仙峯)과 총석정에만 초점이 맞춰지는데 비하여 정수영은 주변 경관까지 그려 넣었다.

정수영은 그림의 제발(題跋)에

“추지령에서 몇 리를 가면서 봉우리 서너 곳이 바라보이는데, 꼭대기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마주 서 있는 것은 바다의 문과 같다.

이 일대는 기다란 산봉우리들이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가다가 우뚝 솟아서 바다로 들어갔다. 둥그렇게 솟아 있는데 그 위에 정자가 있다. 정자 못 미쳐 1리쯤 되는 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을 대강 그렸다.“고 했다.

 

[정수영 「해산첩」<해금강 군옥대(海金剛群玉臺)>, 지본담채, 37.2 x 61.9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의 제발은 “입석포(立石浦)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거슬러 올라갔다. 이 날에 풍랑(風浪)이 일어서 배에서 두려움을 느껴 5리쯤 가다가 해금강에서 배를 댔다. 돌 봉우리가 우뚝 수십 길이 될 만큼 솟아올라 있는데 이를 가리켜 군옥대(群玉臺)라 한다”로 시작된다.

풍랑에 놀라서 그랬는지 그림은 해금강 군옥대(群玉臺) 모습은 작게 그리고 험한 파도에 더 힘을 쏟은 느낌이다. 수십 길이 된다는 돌 봉우리들보다 몇 배나 높아 보이는 바다 물결은 마치 쓰나미라도 몰려오는 것처럼 거세 보인다.

 

[정수영 「해산첩」<삼일호(三日湖)>, 지본담채, 37.2 x 61.9cm, 국립중앙박물관]

 

[정수영 「해산첩」〈옹천원조(甕遷遠眺), 지본담채, 37.2 x 61.9cm, 국립중앙박물관]

 

「해산첩」의 마지막 그림인 〈옹천원조(甕遷遠眺)는 독벼랑이라 불리는 옹천(甕遷)을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에 바로 접하여 있는 절벽의 좁고 위험한 길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옹천의 특색이 이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옹천(甕遷)이라는 바위절벽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굳이 왜 바다에 돌출되어 있는 이 바위의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리적 특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정수영의 「해산첩」그림들은 경물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고 그 경물을 보았을 때의 느낌 같은 정서적 요소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어떤 경물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할 때에는 그 경물을 대할 때의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어서였겠지만, 정수영의 그림에서는 경물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느낌들을 받기가 힘들다. 지리학자의 가통을 이어받은 정수영에게 그림은 감흥을 위한 것이 아닌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삼일호는 둘레가 무려 6km에 가까운 넓이의 호수다. 그러나 정수영의 <삼일호(三日湖)>는 호수라기보다는 어느 정원의 연못처럼 느껴진다. 같은 구도로 그려진 김홍도의 <삼일포(三日浦)>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지고, 심사정의 <삼일포>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곳의 그림처럼 보인다.

 

[김홍도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중 <삼일포>, 견본담채, 30.4 x 43.7cm, 개인]

 

[심사정 <고성삼일포(高城三日浦)>, 지본담채, 27.0 x 30.5cm, 간송미술문화재단 ㅣ 그림에 눈처럼 보이는 하얀 점들은 그림에 곰팡이가 핀 것이다. 그림 가운데의 희미한 실선이 접혔던 자국이고, 접어서 보관하던 중에 곰팡이가 펴서 하얀 점들은 서로 마주보며 대칭을 이루는 형태가 되었다.]

 

같은 진경산수라도 그림을 그림 되게 하려는 그림과 사실적 기록이 목적인 그림에는 이렇듯 차이가 있다.

 

 

 

참고 및 인용 : 해산첩(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북한지리정보(2004, CNC 북한학술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