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26 - 천축고선생댁
예산 화엄사 뒷편의 병풍바위에는 <詩境> 말고도<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라는 석각이 또 있다.
[<天竺古先生宅> 암각]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천축고선생댁이란 '천축 나라(인도)의 옛 선생댁'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집', 다시
말해서 '절집'이라는 의미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을 추사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예산고 노재준교사가 작년 2월초 예의 예산뉴스 무한정보에 올린 글을 보면 그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오랜 세월을 견디고 용케 귀환한 추사의 글씨는 바로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대련 작품이다. 일본 오카야마에서 소장되어 있다 돌아왔다. 세월의 더께는 비켜갈 수 없어
군데군데 구겨져 상처 입은 곳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무사 귀환이다.'
[추사 대련 <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무한정보 사진>
[추사 대련 <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newsis사진>
작품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윗 사진은 노재준교사가 경매를 위해 전시된 작품을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아래 사진은 일본 박물관의 도록에 실린 사진을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어쨌거나 같은 작품이다.
이 대련 작품에 대한 노재준교사의 글이 계속된다.
추사는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라고 대련 형식으로 쓰고,
좌우에 협서(脇書, 본문 옆에 따로 쓴 글)를 곁들였다. 대련 형식은 조선에서는 박제가의 글씨가 처음 보이고,
추사가 즐겨 쓴 형식이다. 대련 시구는 ‘옛 동파거사를 떠올려보니, 엄연한 천축고선생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협서를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소재(옹방강 서재)에 봉안한 동파입극상 좌우에 이 대련의 글귀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심운초가 옛사람들의 글귀를 모아서 만든 구인데, 담계옹(옹방강)이 직접 쓴 것이다. 노련한 필치가
웅위하고 기이하니 마치 고목의 등걸이 푸른 담벽에 서려있는 듯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그 필의를 모방하려
하니, 땀 흘려 쓰러질 정도이어 추하고 졸렬함을 더욱 깨닫는다. 소봉이 쓰다.
(嘗見蘇齋所奉笠屐像左右懸此聯 是沈雲椒所集句覃翁自寫 老筆雄奇如古木蒼藤蟠交翠壁
今欲追思仿其意 汗流是僵益覺醜拙 小蓬)"
이 대련 글씨는 1810년 25세 때 청나라 연행(燕行)을 했던 추사가 스승의 연을 맺은 담계(覃溪) 옹방강
(1733~1818)의 서재에 모신 동파입극상(東坡笠屐像) 좌우에 걸려있던 글씨를 기억했다 쓴 것이다.
옹방강의 행서 글씨는 방필(方筆, 획의 처음과 끝이 모가 난 형태)이 아닌 원필(圓筆, 획의 처음과 끝이 둥근 형태)
이 특징이다. 즉 원필인 옹방강의 글씨체로 쓴 것이다. 추사 특유의 서체로 보기 힘들다.
이상의 내력으로 보아 '天竺古先生宅'이란 말은 옹방강의 서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현재 이
글씨에 대한 안내문에는 서체가 행서로 설명되어 있는 모양이다. 노재준교사가 이에 대하여 “안내판 내용에
‘유려한 행서로 써서 새겨놓은 것’이라고 돼 있는데 이 서체는 온전한 해서체이기 때문에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지난 해 3월 연재 중인 ‘추사 김정희, 그 낯섦과 들춤 사이’에 올렸다.
그러자 소설가 표윤명이 이에 대한 반론을 내놓았다.
“이 암각 글씨의 서체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결론은 이 암각 글씨는 예서기가 깃든 해서는 물론 해서, 해행,
행서(行書)까지 두루 사용해 쓴 명작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천(天)자의 내리긋는 획이 위로 솟구치게 쓴 것과 좌우가 비대칭인 것이 분명한 행서이다. 또한 추사 서결에서
쓴 행서 천(天)자와 똑 같다. 그리고 축(竺)자의 죽머리를 봐도 그렇다. 아래 점획 하나를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그어 쓰기도 했다. 행서(해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음 고(古)자를 보면 예서(隸書)기도 보인다.
예서기가 보인다고 한 이유는 가로가 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횡으로는 길고 종으로는 짧은
장방형의 글씨가 바로 예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古)자를 가로로 길게 써야 천축고선생댁 전체가
조형미를 갖출 수 있다. 만약 고자를 행서의 형태로 쓴다면 竺古 두자가 세로로 길게 써지기 때문에 공간적인
허전함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감안해 가로가 긴 형태의 예서기가 깃든 고(古)자로 쓴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산이수정 편액이 있다. 일자와 산자를 가로로 나란히 쓰게 되면 전체적인 조형미가 떨어진다.
때문에 두 글자를 위 아래로 배치했다. 이것이 추사 서체의 절묘한 조형미다. 선(先)자는 행서다. 이를 확대해
보면 암각글씨임에도 흘려 쓴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자는 해서(楷書)다. 댁자도 해서다
이상과 같이 보았을 때 천축고선생댁 암각글씨는 예서기가 깃든 해서, 해서, 해행, 그리고 행서까지 두루
사용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체를 넘나들며 한 작품에 고루 섞어 쓴 것이다. 이는 추사 서체의 특징이자
묘법이 아닌가 한다.“1
[표윤명 소설가가 설명을 위하여 사용한 사진들]
젊은 시절, 추사가 서자 상우를 위하여 쓴 <동몽선습> 해서체는 글자의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표윤명 작가가 제시한 글자들에 그런 특징이 확연하다. 다만 추사의 글씨가 계속 변했다는 점은 별개다.
어쨌거나 표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듯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글자 모양의 안배에 고심을 한다. 다만 추사는
더 뛰어나고 비범했던 것이다. 추사의 글씨를 연구하는 분들 사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