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26 - 천축고선생댁

從心所欲 2018. 6. 18. 16:41

 

예산 화엄사 뒷편의 병풍바위에는 <詩境> 말고도<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라는 석각이 또 있다.

 

 

[<天竺古先生宅> 암각]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천축고선생댁이란 '천축 나라(인도)의 옛 선생댁'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집', 다시

말해서 '절집'이라는 의미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을 추사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예산고 노재준교사가 작년 2월초 예의 예산뉴스 무한정보에 올린 글을 보면 그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오랜 세월을 견디고 용케 귀환한 추사의 글씨는 바로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대련 작품이다. 일본 오카야마에서 소장되어 있다 돌아왔다. 세월의 더께는 비켜갈 수 없어

군데군데 구겨져 상처 입은 곳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무사 귀환이다.'

 

 

 

[추사 대련 <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무한정보 사진>

 

 

[추사 대련 <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  newsis사진>

 

작품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윗 사진은 노재준교사가 경매를 위해 전시된 작품을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아래 사진은 일본 박물관의 도록에 실린 사진을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어쨌거나 같은 작품이다.

이 대련 작품에 대한 노재준교사의 글이 계속된다.

 

추사는 ‘상견동파구거사 엄연천축고선생(想見東坡舊居士 儼然天竺古先生)’라고 대련 형식으로 쓰고,

좌우에 협서(脇書, 본문 옆에 따로 쓴 글)를 곁들였다. 대련 형식은 조선에서는 박제가의 글씨가 처음 보이고,

추사가 즐겨 쓴 형식이다. 대련 시구는 ‘옛 동파거사를 떠올려보니, 엄연한 천축고선생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협서를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소재(옹방강 서재)에 봉안한 동파입극상 좌우에 이 대련의 글귀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심운초가 옛사람들의 글귀를 모아서 만든 구인데, 담계옹(옹방강)이 직접 쓴 것이다. 노련한 필치가

웅위하고 기이하니 마치 고목의 등걸이 푸른 담벽에 서려있는 듯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그 필의를 모방하려

하니, 땀 흘려 쓰러질 정도이어 추하고 졸렬함을 더욱 깨닫는다. 소봉이 쓰다.

(嘗見蘇齋所奉笠屐像左右懸此聯 是沈雲椒所集句覃翁自寫 老筆雄奇如古木蒼藤蟠交翠壁

今欲追思仿其意 汗流是僵益覺醜拙 小蓬)"

 

이 대련 글씨는 1810년 25세 때 청나라 연행(燕行)을 했던 추사가 스승의 연을 맺은 담계(覃溪) 옹방강

(1733~1818)의 서재에 모신 동파입극상(東坡笠屐像) 좌우에 걸려있던 글씨를 기억했다 쓴 것이다.

옹방강의 행서 글씨는 방필(方筆, 획의 처음과 끝이 모가 난 형태)이 아닌 원필(圓筆, 획의 처음과 끝이 둥근 형태)

이 특징이다. 즉 원필인 옹방강의 글씨체로 쓴 것이다. 추사 특유의 서체로 보기 힘들다.

 

이상의 내력으로 보아 '天竺古先生宅'이란 말은 옹방강의 서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현재 

글씨에 대한 안내문에는 서체가 행서로 설명되어 있는 모양이다. 노재준교사가 이에 대하여 “안내판 내용에

‘유려한 행서로 써서 새겨놓은 것’이라고 돼 있는데 이 서체는 온전한 해서체이기 때문에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 지난 해 3월 연재 중인 ‘추사 김정희, 그 낯섦과 들춤 사이’에 올렸다.

그러자 소설가 표윤명이 이에 대한 반론을 내놓았다.

 

“이 암각 글씨의 서체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결론은 이 암각 글씨는 예서기가 깃든 해서는 물론 해서, 해행,

행서(行書)까지 두루 사용해 쓴 명작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천(天)자의 내리긋는 획이 위로 솟구치게 쓴 것과 좌우가 비대칭인 것이 분명한 행서이다. 또한 추사 서결에서

쓴 행서 천(天)자와 똑 같다. 그리고 축(竺)자의 죽머리를 봐도 그렇다. 아래 점획 하나를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그어 쓰기도 했다. 행서(해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음 고(古)자를 보면 예서(隸書)기도 보인다.

예서기가 보인다고 한 이유는 가로가 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횡으로는 길고 종으로는 짧은

장방형의 글씨가 바로 예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古)자를 가로로 길게 써야 천축고선생댁 전체가

조형미를 갖출 수 있다. 만약 고자를 행서의 형태로 쓴다면 竺古 두자가 세로로 길게 써지기 때문에 공간적인

허전함이 생길 수 있다. 이를 감안해 가로가 긴 형태의 예서기가 깃든 고(古)자로 쓴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산이수정 편액이 있다. 일자와 산자를 가로로 나란히 쓰게 되면 전체적인 조형미가 떨어진다.

때문에 두 글자를 위 아래로 배치했다. 이것이 추사 서체의 절묘한 조형미다. 선(先)자는 행서다. 이를 확대해

보면 암각글씨임에도 흘려 쓴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자는 해서(楷書)다. 댁자도 해서다

이상과 같이 보았을 때 천축고선생댁 암각글씨는 예서기가 깃든 해서, 해서, 해행, 그리고 행서까지 두루

사용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체를 넘나들며 한 작품에 고루 섞어 쓴 것이다. 이는 추사 서체의 특징이자

묘법이 아닌가 한다.“1

 

 

 

 

 

 

 

 

 

[표윤명 소설가가 설명을 위하여 사용한 사진들]

 

젊은 시절, 추사가 서자 상우를 위하여 쓴 <동몽선습> 해서체는 글자의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표윤명 작가가 제시한 글자들에 그런 특징이 확연하다. 다만 추사의 글씨가 계속 변했다는 점은 별개다. 

어쨌거나 표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듯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글자 모양의 안배에 고심을 한다. 다만 추사는

더 뛰어나고 비범했던 것이다. 추사의 글씨를 연구하는 분들 사이에도 서로 논란이 있을만큼 추사의 서체

운용은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결코 서법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추사 글씨의 내공은 문외한이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경지에 있음이 틀림없는 듯 하다

 

  1.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서체에 대한 소고(小考), 2017.04.03, 예산뉴스 무한정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