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거치면서 생겨난 국가적 혼란은 조선의 사회적 변동을 불러왔다. 왜란 이후 남발한 공명첩(空名帖)과 그 관리 부실은 조선 사회의 중심축이었던 신분제도를 문란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숙종 때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 중 6%밖에 되지 않았던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 정조 대에는 30%에 이르고 고종 때에는 인구의 9할이 양반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양반에 대한 권위를 떨어뜨렸다. 그런 와중에 사대부와 관료 중심의 조선사회에 새로운 신분 세력이 떠올랐다. 신흥 부유층이다. 종래의 조선사회에서는 부(富)마저도 양반들이 독점했었지만, 상업과 교역이 발전하면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부상(富商)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의관(醫官), 역관(譯官)과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