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들 16

난정집서와 Don't Touch Me

왕희지(王羲之, 307 ~ 365)는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東晋)의 서예가이다. 특히 그는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일컬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쓴 는 왕희지 글씨 중에서도 ‘행서(行書)의 신품(神品)’이라고 불리며 이후 한·중·일 삼국의 서예가들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53년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의 난정(蘭亭)에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시회를 갖았다. 그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지은 시들을 모아 난정집(蘭亭集)이라는 시집을 만들기로 하여 왕희지가 이 시집의 서문을 썼다. 당시 왕희지는 술을 마신 가운데 글을 썼는데 글자는 모두 28행 324자였고 그 가운데 ‘지(之)’자가 모두 스무 자였다. 왕희지가 나중에..

흔적들 2020.10.10

좋은 글 유감

좋은 글, 좋은 말이라며 이사람 저사람 수도 없이 보낸다. 어디 좋은 글, 좋은 말 만들어내는 공장이라도 있는지 형형색색의 글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그 글들에는 삶이 바탕이 된 지혜나 통찰력은 찾기 힘들다. 단지 심금을 울리려 작정한 노력의 흔적만 도드라져 보인다. 쓰는 사람은 어떤 목적이 있어 그렇다 치자. 그런 글을 받아 남에게 전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일까? 궁금하다. 그런 글들을 보고 단 10분이라도 글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글의 내용을 마음에 담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道廳而塗說 德之棄也)” 「논어(論語)」편에 있는 공자 말씀이다. 어쩌다 들은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밑거름으로 삼지 않고, 바로 다..

흔적들 2019.08.02

청춘들아 너희가 본래 청춘이며 낸들 본래 백발이냐

1). 삼년상(喪)을 치루는 이유 우리는 불문율로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삼년상일까? 재아(宰我)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년상은 너무 깁니다. 군자가 삼년동안 예(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삼년동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면)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등장하며, 불씨를 얻는 나무도 다시 처음의 나무로 돌아오니 일 년이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물었다.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예전에 상중에는 베옷을 입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이렇게 물은 것이다. 그러자 재아는 “편안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공자는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여라. 대체로 군자가 ..

흔적들 2019.05.08

찰리 채플린으로부터의 지혜

작은 중산모(bowler)에 몸에 꽉끼는 윗도리, 헐렁한 바지와 큼지막한 구두, 작은 콧수염과 짧은 지팡이에 우수꽝스러운 팔자 걸음. '작은 방랑자(little tramp)'라는 이름의 이 캐릭터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너무나 친숙한 인물이라 찰리 채플린의 실제 모습과 혼동을 불러 일으킬 정도이다.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 ~ 1977)은 영국 출신의 희극배우로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이기도 했다. 무성 영화 시대의 가장 창의적인 영화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찰리 채플린은 위대한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인 말들을 남겼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래서 나는 멀리 보려고 한다.] [불행해 하면 삶은 당신을 비웃는다. 행복해 하면 삶은 당신에게 미소를 ..

흔적들 2018.07.19

엄마

“엄마!.....” “엄마!.....” 환갑을 훌쩍 넘긴 사내가 집을 뱅뱅 돌며 엄마를 부른다. 모퉁이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다 휑하니 스산한 모퉁이 뒤편을 보고는 다리에 맥이 풀려 휘청거린다. 그래도 다시 돈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거기 웃고 뒤돌아 보고 계실 것 같아서. 맥빠진 발걸믐을 멈춰 하늘을 본다. 먼 곳 어느 구석엔가 흔적이라도 보일까, 아니라면 점차 가물가물해지는 그 모습을 그려라도 볼 수 있을까. “엄마!.....” 탄식처럼 흘러나오다 목구멍에 걸린 소리 끝에는 엄마의 모습도 없고 대답도 없다. 다시 또 돈다. 모퉁이를 돌고 또 돈다. 살아생전 듣도 보도 못 한 이 낯선 곳에 계실 리 만무한 줄 알면서도 미친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이내 땅에 주저앉아버릴 것 같아서, 어..

흔적들 2017.10.18

홍제원(와이너리펜션) 2

도착한 날 밤 펜션 주인장이 내준 와인은 사과로 만든 white wine. 포도가 아닌 사과로 만든 와인인데도 전혀 어설프지 않고 포도주 다우면서도 맛이 아주 산뜻했다. 게다가 꽤 맛있었다. 술을 마시는 것 같은 부담이 전혀 없어 몇 병이라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ORTO는 이탈리어라는데 주인장의 설명을 듣고도 잊어버렸다가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터밭', '해(달,별)의 뜸'이라고 나와있는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인장이 설명해줬던 의미가 더 멋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인장은 자신이 기른 사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선 과수원의 위치가 해발 600m의 높이에 위치해 있어 일교차가 큰 환경으로 사과의 당도가 높아 맛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대부분의 과수 농가에서 색깔을 빨갛..

흔적들 2017.03.10

홍제원(와이너리펜션) 1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홍제원. 요즘 다양한 테마 펜션들이 유행이지만 국내에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Winery) 자체가 드문 실정에 와이너리 안에 위치한 와이너리 펜션이라는 concept이 신선하고 이국적이었다. 3월 1일, 안내나 표지판이 없는 길을 내비에만 의존해 도착한 펜션은 입구부터 사방 모두가 사과나무가 가득했지만 때가 때인지라 가지만 앙상한 사과나무 가운데 자리한 두 동의 흰색 건물이 조금은 황량하게 느껴졌다. 두 건물 중 하나는 와이너리이고 다른 하나가 펜션이었다. 건물 뒷 편에서 건물 벽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따라 계단을 오르자 눈 앞에 소나무가 울창한 산 풍경이 갑자기 계단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펜션과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너편의 백두대간 수목원의 모습이었다. 계단 양쪽에..

흔적들 2017.03.04

부모란 존재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같은 존재"라는 말에는 괜히 가슴이 찡했고 딜란 토마스의 詩를 들을 때는 전율을 느꼈다. 자식에게는 유령같은 존재가 될지라도 부모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분노해야 한다. 나이 먹어 편히 노년을 보내며 삶을 마감할 생각 대신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세상의 모든 불의에 대하여, 빛이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끝없이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Dylan Thomas (1914-1953)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

흔적들 201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