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500년의 역사에 수많은 인물들이 오르내리지만 그럼에도 명재상(名宰相)으로 불리는 인물은 거의 없다. 세종 때의 성세를 이루는데 기여했던 황희 정도가 겨우 거론되는 정도다. 그러나 황희가 농사개량과 국방문제에 일부 공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가 명재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의 치적(治積)때문이 아니다.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침착하였다. 사리가 깊고 청렴하며, 충효가 지극하였다. 학문에 힘써 높은 학덕을 쌓았다”는 등 거의 개인적 신상에 관한 내용들이다. 황희정승에 대해 전해지는 많은 일화들도 그 대부분은 그의 청빈함이나 관용,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련된 것들이다. 통상 삼국지로 불리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은 다재다능함과 뛰어난 역량으로 오갈 데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처지의 유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