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236

일두 정여창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살아있을 때 당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에게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후학들이 두 사람을 끌어다 당파 싸움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자신들 학통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방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공경한다는 선학들을 끌어다 괜한 욕을 보인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정치를 주도한 세력인 사림(士林)은 소위 붕당으로 동·서인으로 갈리기 전까지는 큰 맥락에서 하나의 학통(學統)이었다. 이황의 제자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였던 기대승(奇大升)은 조선 성리학의 연원을 정몽주에 두고 이것이 길재를 거쳐 길재의 제자인 김숙자와 그의 아들인 김종직으로 이어진 뒤 김굉필과 조광조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바 있..

우리 옛 그림 2022.07.28

독서당계회도

교통방송을 듣다 보면 독서당길이 자주 언급된다. 독서당길은 성동구 응봉동에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 부근까지에 이르는 간선도로이다. 워낙 익숙해진 이름이라 별 다른 생각없이 넘길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독서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 일이다. 조선 시대에는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들이 학문에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라는 것이 있었다. 사가(賜暇)는 관리의 휴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가독서제는 관청업무는 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힘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 학사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된 제도다. 기간은 짧게는 1개월이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1 ~ 2년이 되기도 하였다. 사가독서제가 처음 실시된 세종 때에는 독서를 ..

우리 옛 그림 2022.06.24

겸재 정선 귀거래도

귀향은 외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는 것을 특별히 귀거래(歸去來)라고 한다. 1,500여 년 전 중국의 도연명이 잠시 맡았던 현령 자리를 내놓고 귀향하며 썼다는 란 시로 인하여 명성을 얻게 된 말이다. 도연명의 가 고금을 통하여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복잡한 세파에 시달리는 괴로운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끊이지 않고 존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귀촌을 생각하는 심정과 크게 다른 바가 없다. 지금보다는 훨씬 단순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옛날의 삶도 녹녹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라건대, 이제 세상과 사귐도 그만두고 세속과 어울림도 끊어버리리라. 세상이 나와는 서로 어긋나니 이제 다시 수레를 메고 세상에 나가 무엇을 구하랴. 살다 보면..

우리 옛 그림 2022.06.14

단원화파 변지순

단원(檀園) 김홍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였던 만큼 당시에 그의 화풍을 따른 화가들이 많았다. 김홍도와 사적으로 가까운 인물들 가운데도 있었고 후배 화원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아들인 김양기를 포함하여 같은 화원 화가이자 친구였던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 선배 화가였던 김응환의 아들 김석신과 조카 김득신, 사위 이명기까지 그리고 유운홍과 유숙 같은 화원들이 거론된다. 이들 외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변지순(卞持淳)이라는 화가도 있었다. 변지순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활동했던 생몰 연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화가다. 그의 신분은 무관(武官)이라는 주장도 있고 동래부(東萊府) 소속 화가라는 주장도 있으며, 또한 1820 ~ 1830년대에는 무과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활동하였다는 주..

우리 옛 그림 2022.05.06

시령도(詩舲圖)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병조참판을 지낸 문신이자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려졌던 서화가이다. 9세부터 학문을 하면서 재동(才童 )이라는 평을 들었고, 자라면서는 시·서·화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실학자 이광려(李匡呂)에게서 시를 배워 조선 500년 이래의 대가라는 평을 얻었으며, 강세황 문하에서 묵죽을 배워 조선의 3대 묵죽화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신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시와 그림을 잘했다고 한다. 는 신위가 자신의 제자를 위하여 두 아들과 함께 만든 두루마리 형태의 서화 합작도이다. 신위가 행서로 ‘시령도(詩舲圖)’라는 제목을 썼으며, 큰아들 신명준이 그림을 그리고 첫 번째 발문을 쓴 뒤, 둘째 아들 신명연이 또 다른 글을 적었다. 그림을 그린..

우리 옛 그림 2022.04.24

여산(廬山)

여산(廬山)은 중국 양자강 중하류의 남쪽에 위치한 장시성[江西省]에 있는 높이 약 1,600m의 산이라 한다. 주(周)나라 때의 현자(賢者)인 광속(匡俗)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숨어 살았는데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찾았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사라지고 빈 초막만 남아있었기에 ‘초막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여산(廬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가의 8선(仙)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때의 여동빈(呂東賓)이 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선인동(仙人洞)이라는 동굴도 있어 여산은 도교와 연관이 깊다. 그래서인지 여산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은일(隱逸)의 땅으로 이름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4세기 말에는 동진(東晋)의 혜원(慧遠)이 여산에 백련사(白蓮社)를 창건하고 수행도량으로 삼으면서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성지로 떠올랐고, 지..

우리 옛 그림 2022.04.11

석당 이유신

석당(石塘) 이유신(李維新)은 낯선 이름이다. 그의 가계와 행적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조선 후기의 학자 유재건(劉在健)이 쓴 여항인들의 전기집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통하여 그가 여항문인이자 화가였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이유신이 돌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다. 1753년에 그의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고, 1790년대에도 화가 이인문(李寅文), 서예가 유한지(兪漢芝), 서화가 신위(申緯) 등과 교유한 기록들로 미루어 대략 그의 생몰년도는 1730년대에서 1800년경까지로 미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하는 이유신의 작품들은 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화훼화 등 그 화목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산수화이다. 그의 그림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옛 그림 2022.04.05

심사정 소상팔경도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 주변의 절경을 소재로 하는 그림이다. 처음에는 실경을 바탕으로 그려졌지만,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아름다운 경치의 전형으로 이상화 되면서 중국에서 조차 점차 관념산수(觀念山水)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본래 경치의 아름다움보다는 경치가 전해주는 의미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된 것이다. 그 결과 소상팔경은 실경과 관계없이 시대에 따른 화풍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계속 변모해갔다. 특히 소상의 실제 경치를 본 적이 없는 조선의 화가들이 그린 소상팔경도는 거의 상상화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물론 전해오는 옛 중국 그림들을 보기도 했겠지만, 대개는 소상팔경을 대표하는 각각의 4자로 된 화제(畵題)에서 느낀 자신의 의취를 붓으로 ..

우리 옛 그림 2022.03.21

심사정의 전이모사 3

심사정은 송나라 화가들을 거쳐 소위 원말(元末) 4대가로 불리는 예찬, 오진(吳鎭),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등의 그림도 따라 그렸다. 원말 4대가는 나이로 보면 황공망(黃公望, 1269 ~ 1354), 오진(吳鎭, 1280 ~ 1354), 예찬(倪瓚, 1301 ~ 1374), 왕몽(王蒙, 1308 ~ 1385)의 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찬 대신에 조맹부(趙孟頫, 1254 ~ 1322)를 넣기도 한다. 자구(子久)는 황공망(黃公望)의 자이다. 원래 이름은 육견(陸堅)이었으나 황씨(黃氏) 성을 가진 사람의 양자로 들어가 성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황공망은 조맹부(趙孟頫)의 영향을 받아 5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화법(畵法)..

우리 옛 그림 2022.03.14

심사정의 전이모사 2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에 심사정은 '의동북원(擬董北苑)'이라고 적었다. 동북원(董北苑)을 모방했다는 뜻인데 동북원은 중국 남당(南唐)에서 북송(北宋) 사이의 화가인 동원(董源, 미상 ~ 962년 추정)을 가리킨다. 동원이 북원부사(北苑副使)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다. 중국의 산수화는 5대 10국(907 ~ 960) 시대에 많은 발전을 거둬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동원은 이 시기에 활동하면서, 제자인 거연(巨然)과 함께 강남 산수화 양식을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동원과 거연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을 동거파(董巨派)라고 부르는데 황공망을 비롯한 원말 4대가와 명대 중기의 심주(沈周) 등 오파(吳派)를 통하여 동거파의 전통이 문인화풍의 전거(典據)로 계승되었다. 그런 만..

우리 옛 그림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