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심사정의 전이모사 2

從心所欲 2022. 3. 12. 15:54

[심사정 <산거열락(山居悅樂)>, 지본답채, 23 x 16.5cm, 간송미술관]

 

<산거열락(山居悅樂)>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에 심사정은 '의동북원(擬董北苑)'이라고 적었다. 동북원(董北苑)을 모방했다는 뜻인데 동북원은 중국 남당(南唐)에서 북송(北宋) 사이의 화가인 동원(董源, 미상 ~ 962년 추정)을 가리킨다. 동원이 북원부사(北苑副使)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다.

중국의 산수화는 5대 10국(907 ~ 960) 시대에 많은 발전을 거둬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동원은 이 시기에 활동하면서, 제자인 거연(巨然)과 함께 강남 산수화 양식을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동원과 거연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을 동거파(董巨派)라고 부르는데 황공망을 비롯한 원말 4대가와 명대 중기의 심주(沈周) 등 오파(吳派)를 통하여 동거파의 전통이 문인화풍의 전거(典據)로 계승되었다. 그런 만큼 동원은 남종문인화의 중조(中祖)로 추앙받던 화가였다.

동원은 강남의 운연(雲煙)이 있는 풍경을 엷은 먹을 겹쳐 부드러운 붓으로 그린 산수화를 특기로 하였다. 특히 무거운 색감이 특징이다.

 

[동원 <동천산당도(洞天山堂圖)> 견본담채, 121.2 x 183.2cm 교토양족원]

 

[동원 <한림중정도(翰林重汀圖)>, 견본담채 181.5 x 116.5cm]

 

동원을 모방했다는 심사정의 <산거열락>은 동원의 산수화풍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산거열락>은 중국 역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여 판각한《고씨화보(顧氏畵譜)》에 들어있는 동원의 산수화를 본으로 한 그림이라고 한다. 모사한 것을 판각하여 인쇄한 그림을 보고 그렸으니 필법은 따랐을지 몰라도 질감까지는 미처 옮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남종화의 계보는 동원과 거연을 거쳐 북송의 미불(米芾), 미우인(米友仁) 부자로 이어지는데 심사정은 역시 미불의 화법도 연습했다.

 

[심사정 <방미남궁(倣米南宮)>, 지본담채, 27.5 x 35cm, 개인소장]

 

미남궁(米南宮)은 미불(米芾, 1051 ~ 1107)의 다른 호칭이다. 미불은 북송(北宋)의 서법가(書法家)이자 화가로 관리이기도 했다. 미불은 동원(董源)을 배워 그림을 그렸고, 뒤에는 미법산수(米法山水)로 불리는 산수화법의 조형(祖型)을 만들어 문인화 성립에 영향을 끼쳤다.

점을 여러 번 겹쳐 찍어서 형태를 표현하는 미점준(米點皴)을 구사하여 부드러운 곡선의 흙산이나 머리 보이는 나무 등을 즐겨 그렸다. 특히 미점준은 비온 뒤나 짙은 안개가 낀 습윤한 자연경관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되었다.

 

[미불 <춘산서송도(春山瑞松圖)>, 견본담채, 44.1 x 25.7cm,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심사정은 말년에 남북종의 여러 화법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양식을 완성했다고 하고, 특히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는 남종화법과 북종화법의 하나인 절파화풍을 결합시킨 소위 절충화풍을 시도했다고 전한다. 심사정이 송나라 때 북종 산수화(北宗山水畵)의 선도적인 화가로 꼽히는 범관의 그림을 방한 작품도 전한다.

 

[심사정 <범관법(范寬法) 산수도>, 견본담채, 31.7 x 22.8cm, 국립중앙박물관]

 

범관(范寬, 990년 추정 ~ 1027년 추정)은 북송(北宋) 초기의 산수화가로 미불보다는 조금 앞선 시대의 화가다.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점을 내리찍어 그리는 우점준(雨點皴)을 써서 건조한 화북지방의 황토암석을 그렸다고 한다. 산의 아랫부분에서는 점을 크게 나타내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찍는 기법이다.

그러나 심사정의 그림에서는 산과 절벽의 표면에 군데군데 붓을 찍어내기는 했으나 범관이 구사했던 우점준(雨点皴)과는 다른 형태라는 평가다.

 

심사정이 화원 화가의 그림을 방한 것도 있다. 하규와 더블아 남송(南宋) 후반기의 원체산수화(院體山水畵)를 대표하는 화가인 마원(馬遠, 1160? ~ 1225?)이다. 마원(馬遠)과 하규의 화풍을 묶어 마하파라고 부르는데, 자연을 즐기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으로 치우친 일각구도(一角構圖)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배치하는 것 역시 이 화파의 독특한 화풍이다. 후대의 동기창은 마원과 하규가 화원이라는 이유로 마하파를 북종화로 분류했다.

 

[마원 <산경춘행도(山徑春行圖)>, 견본담채, 27.4 x 43.1cm, 교토 양족원]

 

[심사정 <방마원(倣馬遠) 산수도>, 지본담채, 20.5 x 30.5cm,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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