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10월. 추사는 그때도 봉은사에 있었다. 당시 봉은사에서는 남호(南湖), 영기(永奇)스님이「화엄경」, 정확하게는「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80권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고 이를 목판으로 찍어 인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화엄경판이 마침내 완성되어 경판전을 짓고 보관하게 되어 그 현판 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하였다. 그때가 9월말이었다. 추사는 병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린아이 몸통만한 대자(大字)로 두 글자를 완성했다. 그리고 옆에 낙관하기를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이라고 했다. 이 글씨는 결국 추사의 절필(絶筆)을 고하는 작품이 되었다. 유홍준 박사는 이 글씨가 추사체의 졸(拙)함이 극에 달한 것이라 했다.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