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의 변천과정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셔먼호사건 때 평양감사를 지냈고 개화파의 선구이면서 그 자신 명필이었으며, 추사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박규수(1807 ~ 1876)는 당대의 안목으로 추사체의 변천과정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 ......완옹(阮翁 :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董基昌)1에 뜻을 두었고, 중세(스물네 살에 연결을 다녀온 후)에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 (骨氣)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소동파2와 미불3을 따르고 이북해4로 변하면서 더욱 굳세고 신선해지더니... 드디어는 구양순의 신수(神髓)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