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5 - 서체의 종류 1

從心所欲 2017. 10. 30. 16:55

 

 

서예의 역사

 

붓글씨를 우리는 서예(書藝)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고

부른다. 서예라는 호칭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정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가 처음 열리면서 붓글씨 부분이 다른 미술품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을 때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고, 1945년에 손재형이라는 분이 조선서화동연회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단체의 발족을 계기로 일제

강점기 때 사용하던 '서도'라는 말 대신, 글씨의 예술이란 뜻의 '서예'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그저 서(書)로 불렸다고 한다.

 

붓글씨는 한자를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한자는 상형문자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태생적으로 조형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데다 자형(字形)의 발전과 

힘께 붓,먹, 종이를 통하여서 나타나는 글씨의 미적, 예술적 가치로 인하여 예술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한자를

문자와 글씨로 구별한다면 문자는 언어의 부호로서 기록 또는 의사소통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서(書)는 그

문자의 표현에 있어서 美의식의 활동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書)는 그 서사(書寫) 용구로서의

붓이 기본으로, 경필(펜)로 쓴 글씨나 등사, 인쇄로 된 문자는 서예가 아니다. 서(書)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면 안 되며 모필을 떠나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서예는 진시황 때 문자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이후 전(篆), 예(隸), 초(草), 행(行), 해(楷)의 서체가

생겨나면서 각 서체에 따른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독립된 예술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씨를 감상의 대상으로서 보는 서법 의식이 싹튼 것은 한대부터이며, 마침내 동진(東晉)의 왕희지에

의해서 그 때까지의 기교를 종합하고 그의 창의를 가미한 서법이 완성되었다. 이후 중국의 서예는 이 왕희지의

서풍을 절대적인 것으로서 숭상하는 전통파와, 그것에 반발하여 독자적인 서예를 창조하려는 혁신파의 두 큰

흐름에 따라 성쇠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서체(書體)의 변화와 종류 

 

붓글씨에 쓰이는 한자 서체는 크게 다섯가지로 나뉜다. 즉, 전서(篆書),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해서(楷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인 귀갑수골문(龜甲獸骨文)을 위시하여 은대(殷代), 주대(周代)의

고동기(古銅器) 명문(銘文) 등을 총칭하여 고문(古文)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통일된 글자 모양이

없어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의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글자체를 썼다.  이러한 고문의 자체와 서풍을 정리한 것이

전서(篆書)이다. 전서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의 2종이 있다. 대전은  주문(籒文)1이라고 불리우며 주나라

때 고문(古文)을 정리하여 만들어졌다. 소전은 대전의 체세(體勢)을 길게, 점획(点劃)을 방정하게 하여 서사(書寫)를

편리하게 한 것으로서 진시왕 때 승상 이사가 창시하여 문자를 통일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진나라의 하급관리인 도례(徒隷)사이에서 소전을 직선적으로 간략화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예서(隸書)라고 부른다.

 

 

이 예서가 모체가 되어 해(楷)·행(行)·초(草)의 삼체(三體)가 전개된다. 해서는 예서에서 변이된 것으로서

필획(筆劃)에 생략이 없는 서체이다. 다른 서체보다 발생단계로서는 가장 뒤늦게 성립되었다. 실용보다는

의식적인 정제(整齊)함의 요구에 의해 생긴 서체라 한다. 정서(正書), 진서(眞書)라고도 하여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활자체로도 활용되고 있다.

 

안진경 2  <다보탑비>

  

구양순 <구성궁예천명>

  

조맹부 <고봉화상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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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2002년 발간한

유홍준著 「완당평전」을 발췌, 요약하면서

일부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여 임의 재구성한 글입니다.

 

  1. 중국 주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가 창작한 한자의 자체(字體).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2. 당나라 때의 서예가이자 관리. 집안이 가난하여 종이를 살 형편이 못 되어 붓에 황토물을 적셔 담벼락에 글씨 연습을 했다고 한다. 조맹부, 유공권, 구양순과 더불어 해서사대가(楷書四大家)로 일컬어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