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27

독도와 미국

5월 말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여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난다고 한다. 황공 외람이들은 역대 가장 빠른 한미 정상회담이라느니 일본보다 우리나라를 더 대우하는 증거라느니 설레발을 치면서 새 대통령 띄우느라 입술이 불어터질 지경이다. 궁금한 것은 바이든이 이번 방한에서 우리로부터 무엇을 얻어가려는가 다.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한가하게 한국의 새 대통령 얼굴 한번 보려고 오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여러 의제 가운데 한일 간의 껄끄러운 관계 조정도 하나의 주요한 현안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새 대통령이 어떤 방안을 가지고 대처할지, 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되어있는지,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이 나라의 친미주의자들은 혈맹이니 형제국..

백가쟁명 2022.05.10

지록위마의 세상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빨간색을 보고 까만색이라 해도 같이 까맣다고 해주는 거다.” 돈 꽤나 있다고 거드럭대던 친구가 수십 년 전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평생 들은 말 중에 가장 어이없었던 말 중의 하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양아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양아치 노릇을 하고 살면서도 생각과 말이 의외로 반듯한 양아치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 친구는 뼛속까지 양아치였다. 나는 양아치의 진정한 친구가 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후 우리는 서로 친구가 아니었다. 진나라의 환관 조고는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했다. 지금도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이 상식과 공정이라고 떠드는 인간이 있다. 친구간의 의리라는 개념을 왜곡하고 사슴을 보고 말이라 칭하며 진실을 가리는 행위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남..

백가쟁명 2022.02.20

눈 깔어!

작년 말 개봉된 영화 Don't Look Up. The Big Short의 아담 맥케이 감독 작품이다. Netflix에서 이 영화를 보다 너무 힘들어서 두 번이나 중간에 멈추고 영화를 계속 볼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영화가 후져서가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2022 아카데미상에 작품상을 비롯하여 편집상, 각본상, 음악상 후보에 올라있는 수준이다. 출연진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하여 유명 배우들만도 줄잡아 10명이 넘는다. 천문학자의 조수가 지구와 충돌하는 궤도에 진입한 혜성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다. 최대한 스포일링하지 않는 범위에서 영화를 보기 힘들게 만든 역겨운 요소들을 꼽는다면 두 가지의 말과 하나의 장면이다. 첫째는 영화제목이기도 한 “Don't ..

백가쟁명 2022.02.14

국뽕이 어때서

국뽕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왜(倭) 우익들이 퍼뜨린 ‘헬조선’이란 말에 휩쓸려 스스로 자조하며 의기소침해있었다. 그런데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팬데믹 사태에 대처하는 체계적 의료시스템을 통하여 갑자기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우리도 세계가 왜 우리를 보는지 또 어떻게 보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와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성과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무수히 생산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우리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보니 사람들은 그것을 국뽕이라고 불렀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을 의미하는 ’히로뽕‘의 합성어이다. 국가..

백가쟁명 2022.02.12

완장의 올바른 사용법

지금 정치인들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검사, 판사는 물론 하다못해 기더기까지 꼽사리를 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 알량한 지위를 발판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열중인 꼴을 보노라면, 예전 TV에서 보았던 ‘완장’이라는 드라마가 연상된다. 수준이 딱 그 수준이다. 거기다 늘 자신들 밥줄 지키느라 양심은 뒷전에 두고 사는 주제에 입만 열면 국민과 공정, 정의를 들먹이는 꼬라지는 눈꼴이 시어서 못 봐줄 지경이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간통죄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였다. 현대에서야 개인적 문제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자칫 국가와 사회의 기본 덕목인 강상(綱常)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라 이는 조정에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년) 1..

백가쟁명 2021.08.29

조중동은 왜 이 정권을 그렇게 까댈까?

과거 언론과 정부는 밀월기간이라는 암묵적 관행이 있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략 6개월 정도는 여간해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출발 때부터 두들겨 맞았고, 아직도 매일같이 맞고 있다. 물론 그 타격감이 예전 같지는 않다. 조중동은 왜 이 정부를 패는 일에 선봉장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조중동이 보수로 가장한 수구세력 또는 친일세력이라 서로 가치관이 안 맞아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러나 조중동은 원래 특별한 가치관이 있었던 신문들이 아니다. 조중동이 한 때는 자신들 입으로 정론지(正論紙)임을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이 나라의 대다수 언론들은 늘 권력에 유착하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던..

백가쟁명 2021.07.15

ABC제도와 ABC협회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ABC협회가 제도개선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동안 정부광고 집행에 참고자료로 삼고 언론보조금 지급의 기준으로 삼아왔던 ABC협회의 자료를 향후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앞서 금년 봄에 문체부는 신문사들의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되자, ABC협회에 대한 사무 검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각 신문사에서 주장한 구독자수와 실제 구독자수의 비율을 의미하는 성실율이 ABC협회는 98%라고 발표했지만 문체부의 조사 결과로는 6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에 문체부는 협회에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ABC협회는 이후 제도개선 노력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ABC협회는 문체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문체부가 관리와 감독 권한을 갖고 있으며 ..

백가쟁명 2021.07.11

한번 뿐인 삶.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관리로 굴원(屈原)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초나라 왕족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리하였고 커서는 박학다식에다 언변까지 뛰어나, 젊은 나이에 일찍부터 높은 벼슬에 오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왕의 관심이 멀어지기도 하고,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가 결국에는 멀리 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굴원은 점치는 관리인 태복(太卜) 정첨윤(鄭詹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의심되는 일이 있으니 원컨대 선생께서 결정을 내려주시오!” 그러자 정첨윤(鄭詹尹)은 점대를 바로잡고 거북 껍질을 깨끗이 털며 말했다. “그대에게 무엇을 일러드릴까요?” 굴원이 말했다. “나는 성실 근면하며 소박하게 충성해야 합니까? 아니면 세속에..

백가쟁명 2021.06.28

피아니스트 임현정과 운명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피아니스트 임현정을 생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운명을 듣고서야 그동안 수 없이 들었으면서도 그 명성에 합당한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곡의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았다. 또한 그토록 듣기 싫었던 피아노의 강한 해머 소리가 왜 꼭 피아노에 있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피아노 하나만으로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도 더 장엄하면서 극적인 느낌을 불러내는 임현정의 연주가 놀랍기만 하다. 대개의 음악가들은 국제 콩쿠르를 통하여 자신의 명성을 쌓아간다. 그러나 임현정은 유튜브를 통하여 알려진 피아니스트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에튀드(étude,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자신이 앙코르..

백가쟁명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