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53

오늘도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

과실수에 열매가 열렸을 때, 크고 보다 과실을 수확하기 위하여 알맞은 양의 과실만 남기고 여분의 열매를 따버리는 것을 적과(摘果)라고 한다. 소위 열매솎기이다. 열매가 어릴 때 따주어야 나무 양분의 손실을 막으면서 키울 열매에 더 많은 영양분이 공급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생전 적과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던 사람이 시골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래도 어디 가서 조금 아는 체를 할 때도 있다. 올해는 어제 처음 사과나무 적과를 도우러 갔다. 그늘 없는 땡볕에서의 적과 작업은 언제나 더위와의 사투이다. 그래도 꽃에서 나온 열매를 보는 일은 도시 촌놈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조그만 열매가 몇 달 후에는 주먹보다 큰 과일로 변한다는 사실 또한 여전히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보통 사..

아카시아 꽃 필 때

산마다 아카시아 꽃이 한창이다. 얼핏 보기엔 소나무로 뒤덮인 듯한 산처럼 보여도 꽃이 필 때면 아카시아의 질긴 생명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재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고 어린나무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본 기억들 때문에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나무지만, 산벚나무에 이어 봄의 산을 파스텔 색깔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이 나무의 원이름은 아까시나무라고 한다. 아카시아(Acacia)는 원래 원산지가 열대지방의 나무이고 지금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들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라고 한다. 영어 이름도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의 false acasia이다. 1900년대 초에 황폐해진 산림의 복구용으로 들여와 전국에 식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뽑고 잘라도 끊임없이 ..

서낭당

오래전 우스갯소리에 70대 노인의 성 기능을 ‘도깨비불’에 비유한 것이 있다.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본 적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쩌면 지금 세대에게 서낭당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시골 마을 입구에서 어렵지 않게 보았던 서낭당이 지금은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되어버렸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을 모셔놓는 신당(神堂)이다. 한자로는 각기 성황당(城隍堂)과 성황신(城隍神)으로 쓴다. 마을의 고갯마루나 한길 옆, 마을 어귀 등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서낭신으로 받드는 신수(神樹)와 돌무더기가 대표적 형태이다. 서낭신으로 모시는 큰 나무는 흰 종이와 오색의 천으로 치장되는데, 그 화려함과는 달리 서낭당의 분위기는 오싹한 경..

꽃을 보는 마음

겨울의 우중충한 색을 벗겨낸 것만으로도 봄에 피는 꽃은 어떤 꽃이라도 아름답다. 개개의 꽃 모양을 떠나서 그냥 지닌 색깔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꽃은 누구에게나 예쁘게 보이겠지만, 꽃을 보는 농사꾼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하다. 농사꾼은 꽃이 많이 피는지 적게 피는지를 두고 걱정을 한다. 과수에서는 꽃이 곧 열매이고 미래의 소득이기 때문이다. 꽃이 적으면 결실이 적어질 것을 걱정하고 많으면 적정 수의 꽃을 남기고 꽃을 따버려야 하는 손의 수고가 걱정이다. 친구네 과수원에도 꽃이 피었다. 살구가 제일 먼저 꽃을 피웠다가 떨어지고 체리에 이어 지금은 사과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다. 산골에다 지대도 높아 평지보다는 꽃이 늦는 편이다. 작년에는 꽃이 많이 피었지만 5월에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나무가 냉..

나이 값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반박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앞세우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가치는 어디에서도 동의를 얻기 힘들다. 이제 나이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대우나 존경 같은 예우를 받는 조건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흔한 말로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진부한 과거의 통념을 거부했기 때문일까? 나이 먹은 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만 먹었지 존경받을 구석이 없는 까닭 때문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늙은 말[老馬]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 무사히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

춘래불사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몇 주째 계속되고 있다. 독일 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던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의 유일한 효용은 바로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뿐이다.”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크라이나 소식보다 우리나라 소식에 더 불안하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한다. 안보를 의식한 쇼라고 해도 너무 유치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르니까 저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하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잘못된 지식을 경계하라. 그것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

봄의 말

헤르만 헤세 봄이 속삭인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소년 소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노인들도 모두 봄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젊은 날 「데미안」과 「싯다르타」, 그리고 그의 수많은 글과 시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수십 년이 지나 지금에 다시 읽는 그의 시는 또 다른 느낌이다. 혹시 나는 새싹이 피어오를 자리에 뭉개고 앉아 있는 폐목의 죽은 뿌리는 아닐까?...

낮잠

따스한 봄볕에 취한 것일까? 힘든 고행 길의 여독 탓일까? 웅크려 앉아 두 무릎위에 머리를 올린 모습이 남 보기에는 불편한 듯 보여도 정작 스님은 달고도 깊은 잠에 빠져있을 듯하다. 수행하는 스님이니 속세의 중생들과는 다른 뭔가 더 철학적인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운몽(九雲夢)의 주인공 성진(性眞)이나 환단지몽(邯鄲之夢)의 노생(盧生)과 여동빈처럼 인생의 부귀영화가 한낱 허황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중일까? 어릴 때와 군복무 시절에 햇볕에 데워진 따뜻한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가 저도 모르게 들던 잠은 꿀맛이었다. 밖에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에 장작불 지핀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등을 지지며 자는 잠은 몸을 개운하게 만들고, 더운 여름날 솔솔 부는 바람맞으며 평상에서 자는 잠은 기..

세밑 풍속

어제부터 설 연휴다. 고속도로에 귀성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명절 때만 되면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향을 찾는 인파로 전국의 도로가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산업화 이후 새로 생겨난 우리의 풍속이다. 풍속은 변한다. 우리 고유의 풍속들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예전에는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나면, 일가친척들과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남의 집에 세배 다니는 풍속은 거의 사라졌다. 설날에 세배를 다니는 풍속 말고도 예전에는 ‘묵은세배’라는 풍속도 있었다. 설날 하루 전인 섣달그믐날에 드리는 세배다. 묵은세배는 한 해가 가기 전에 살아 계신 부모님에게와 사당에 모신 돌아가신 조상에게 올렸다. 먼저 조상에게 만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