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수에 열매가 열렸을 때, 크고 보다 과실을 수확하기 위하여 알맞은 양의 과실만 남기고 여분의 열매를 따버리는 것을 적과(摘果)라고 한다. 소위 열매솎기이다. 열매가 어릴 때 따주어야 나무 양분의 손실을 막으면서 키울 열매에 더 많은 영양분이 공급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생전 적과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던 사람이 시골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래도 어디 가서 조금 아는 체를 할 때도 있다. 올해는 어제 처음 사과나무 적과를 도우러 갔다. 그늘 없는 땡볕에서의 적과 작업은 언제나 더위와의 사투이다. 그래도 꽃에서 나온 열매를 보는 일은 도시 촌놈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조그만 열매가 몇 달 후에는 주먹보다 큰 과일로 변한다는 사실 또한 여전히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보통 사과는 처음에 이렇게 다섯 개가 열린다. 그러면 그 중에서 가운데 제일 튼실한 놈만 남겨놓고 나머지 네 개를 따주는 것이 적과이다. 그러니까 다섯 놈 중에서 한 놈만 골라 키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지에 사과가 여러 곳에 달리면 그 가운데 키울 놈과 버릴 놈도 가려내야 한다. 아까워서 모두 그대로 달아놓으면 나중에 사과가 자랐을 때 가지가 열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과는 선택과 집중의 작업이다.
버릴 줄 알아야 더 큰 것을 얻는다는 삶의 교훈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과나무 하나에 이런 결실이 수백 개다. 그것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내는 것이다. 나무가 큰 경우에는 숙련된 사람도 사과나무 하나 적과하는데 족히 30분 가까이 걸린다. 그런데 보통 과수원이라 하면 그런 나무가 최소 수백 그루이다. 게다가 적과는 시기가 있어서 지금부터 약 2주 안에 끝내야 한다. 전국의 모든 사과 농가가 마찬가지다.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턱이 없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여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부르지만 그들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어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주는 품삯도 해마다 올라간다. 지금은 숙련된 시골 아낙 품삯보다 적과를 알지도 못하는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품삯이 더 비싸다. 그런데도 생전 처음 적과를 해보는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한 해 농사를 맡겨야 하는 농사꾼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혹시라도 집안에 과수원을 하는 친척이 있다면 이 봄에 나들이 삼아 일손돕기에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두고두고 진심으로 고마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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