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임병찬(林炳贊)을 비롯하여 최익현(崔益鉉), 황현(黃玹) 등 여러 항일투사들의 초상화를 남긴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 ~ 1941)은 원래 직업이 화가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려 15살이 넘으면서부터는 산수와 화조를 비롯하여 그리지 못하는 분야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기(餘技)였을 뿐이다. 그는 37살이 되던 1886년에 무과시(武科試)에 급제하여 오위(五衛) 소속의 정6품 무관직(武官職)인 사과(司果)를 시작으로 이후 의금부도사와 돌산진과 부산진의 수군첨절제사를 지냈다. 그는 1899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조상의 고향인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으로 낙향하였는데 이때 조정으로부터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사하라는 명을 받았다. 채용신이 50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