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45 - 오륜행실도 3

從心所欲 2021. 11. 5. 12:33

오륜행실도 역시 민화 병풍에서 흔히 보이는 가능한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각 폭마다 개별 소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폭에 몇 가지를 함께 섞어 놓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각 사례에 대하여 글로 소개하는 부분이 간략해졌다.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 지본채색, 병풍전체크기 113 x 335cm, 국립민속박물관]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의 제1폭은 동영대전(董永貸錢)과 혜소위제(嵇紹衛帝)의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동영대전은 한나라 사람 동영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해 빌린 빚을 하늘의 직녀를 만나 베를 짜서 갚았다는 효자 고사이고, 혜소위제(嵇紹衛帝)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인 진(晉)나라 사람 혜소가 반란으로 인해 몽진하는 혜제(惠帝)를 호위하다 적의 화살에 맞아 황제 곁에서 숨졌다는 충신에 대한 고사이다.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中 제1폭, 국립민속박물관]

 

2폭에는 세 가지 소재를 담았다.

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어 하는 계모를 위하여 고기를 잡으러 강에 나갔더니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 올라와 그것으로 계모를 봉양했다는 유명한 효자 왕상에 대한 고사인 왕상득리(王祥得鯉),

귀양 간 남편을 10년이나 기다리고 있는 딸을 그 친정아버지가 다른 곳에 시집 보내려하자 머리를 자르고 밥을 먹지 않아 아버지가 단념했다는 당나라의 열녀 숙영(淑英)의 고사인 숙영단발(淑英斷髮),

왕망이 황제를 독살하고 신(新)나라를 세운 뒤 자신에게 벼슬을 내렸지만 끝내 거절하고 굶어 죽었다는 전한의 충신 공승(龔勝)에 대한 고사인 공승추인(龔勝推印)이다.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中 제2폭, 국립민속박물관]

 

3폭은 장허사수(張許死守)와 조씨액여(趙氏縊輿)이다.

장허사수(張許死守) : 당나라 현종 때 안록산의 장군 윤자기(尹子寄)가 수양(睢陽)을 공격해오자 성을 지키던 허원(許遠)은 장순(張巡)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 병력을 이끌고 도착한 장순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웠고 어느 날은 하루 동안에도 스무 번이나 전투를 했다. 그러나 성 안에 식량이 떨어져 종이와 나무껍질을 함께 먹다가 그도 떨어져 말과 새를 잡아먹으며 버텼다. 그러나 적군이 성 위에 오르고 병사들이 병들어 싸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장순은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해 절하고는 “내 힘이 다하니 살아서 은덕을 못 갚사옵고 죽어서 마땅히 모진 귀신이 되어 적을 죽이겠습니다.” 하고는 결국 적에게 잡혀 죽었다. 허원도 포로가 되어 낙양에 보내졌다가 나중에 죽임을 당했다는 고사이다.

 

조씨액여(趙氏縊輿) : 북송(北宋) 때 왕측(王則)이 미륵불 신앙으로 백선을 선동하여 패주(貝州)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와중에 왕측은 조씨(趙氏) 성을 가진 한 여인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잡아다 아내를 삼으려 했지만 조씨 여인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왕측이 사람 여럿을 시켜 여인을 가두고 지키게 하자, 조씨 여인은 자신이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왕측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나를 아내 삼으려면 날을 가리고 예절을 갖춰 초빙하라.”

그러자 왕측이 조씨 여인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예물을 갖추고 호화롭게 꾸민 수레와 종을 보내 조씨 여인을 맞이해 가려했다. 이에 조씨 여인은 집안사람들에게 “내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작별인사를 했다. 집안사람들이 그 뜻을 물으니, “반역자가 이처럼 더럽게 모욕하는데 제가 어찌 살겠습니까?” 하였다. 집안사람들이 혹시 조씨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라도 하면 왕측에게 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네가 남아있는 친척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조씨 여인은 “염려 마십시오.” 하고는 울며 가마를 타고 갔다. 왕측이 보낸 사람들이 관아에 다다라 가마의 발을 거두고 보니 조씨 여인은 이미 목매어 죽어있었다.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中 제3폭, 국립민속박물관]

 

4폭은 열녀와 충신의 고사다.

미처담초(彌妻啖草) : 백제의 4대 왕인 개루왕(蓋婁王) 때에 도미(都彌)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 처의 외모가 곱고 절개가 있었다. 개루왕이 이에 도미에게 그 아내의 정절을 시험하겠다며 다른 신하에게 임금의 옷을 입혀 그 집에 보내었다. 그 신하는 임금 행세를 하며 남편이 쌍륙(雙六) 내기에 져서 도미의 처를 궁녀로 삼게 되었다며 동침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미의 처는 여종을 대신 자신처럼 꾸며 방에 들여보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왕은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거짓말 한 죄라며 도미를 장님으로 만든 뒤 배에 태워 강에 흘려보냈다. 그런 뒤 왕이 도미의 처를 데려다 억지로 동침하려 하자 도미의 처는 강가에 나가 하늘을 부르며 몹시 울었다. 그러자 웬 배가 다가오기에 도미의 처는 그 배를 타고 한 섬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눈이 먼 남편이 있었다. 도미의 처는 허기진 도미에게 푸성귀 뿌리를 파 먹인 뒤 남편과 더불어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갔다.

 

양방인서금(楊邦人書衿) :  방예서금(邦乂書襟)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송(南宋) 때에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침공해왔고 송나라는 계속 패전하고 있었다. 양방예(楊邦乂)는 자신이 벼슬하고 있던 지역의 수령이 투항을 하자 자신은 물에 빠져 죽으려 했으나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 양방예는 금나라의 장수가 며칠 동안 수차례에 걸쳐 투항할 것을 권유했으나 자신의 옷깃에 ‘조씨(趙氏)의 귀신이 될지언정, 다른 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寧作趙氏鬼 不爲他邦臣]’라는 혈서를 쓰면서까지 거부했다. 이에 적장(賊將)은 양방예가 끝끝내 투항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를 죽였다.

▶조씨의 귀신 :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나라를 가리킴.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中 제4폭, 국립민속박물관]

 

5폭에는 열녀, 효자, 충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강해곡(媛姜解梏) - 원강이 칼을 벗기다. : 한나라 때 성도(盛道)가 난을 일으켰다가 아내 조씨와 함께 잡혀 죽을 형편이 되었다. 조씨의 자는 원강(媛姜)이다. 그러자 원강은 밤중에 남편에게 “법에 따라 살려줄 리가 없으니, 그대는 몰래 도망하여 가라.” 하고는, 형틀을 벗겨 주고 양식과 재문을 싸 주면서 다섯 살 먹은 아들과 함께 도망치게 하였다. 그리고는 남편 대신 심문을 받다가 남편이 멀리 도망갔을 즈음에야 남편이 도망친 사실을 실토하고는 죽임을 당했다. 후에 성도의 부자가 사면되어 돌아와서는 원강이 행한 일에 감동하여 죽을 때까지 다른 아내를 얻지 않았다.

 

자로부미(子路負米) - 자로가 쌀을 짊어지다. :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부모의 양식을 위하여 백리 떨어진 곳에서 쌀을 져왔다는 고사.

 

안원매적(顔袁罵賊) - 안원이 적(賊)을 꾸짖다. :

당나라 때 안녹산(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진격하면서 고성(藁城)에 이르자, 상산(常山)의 태수였던 안고경(顔杲卿)은 명색이 절도사(節度使)인 안녹산을 찾아가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녹산 밑에서 영전판관(營田判官)이었던 안고경을 상산의 태수로 만들어준 당사자가 안녹산이기도 했다. 안고경이 수하 장수 원이겸(袁履謙)과 함께 안녹산을 찾아가자, 안녹산은 안고경에게 금자(金紫)를 하사했다. 그러나 성으로 돌아온 안고경은 역부족이라 하더라도 안녹산과 대항하기로 마음을 먹고 의병을 일으켜 안녹산의 군대와 싸웠으나 결국 패전하여 잡혀갔다. 이때 안녹산은 안고경을 이렇게 꾸짖었다. “내 너를 여쭈어 판관 만들어 주고 몇 년 안 되어 태수가 되게 했는데, 내가 네게 무슨 일을 섭섭히 했기에 나를 배반하는가?”

그러자 고경은 거꾸로 안녹산을 꾸짖었다.

“너는 본래 영주의 양 치는 갈(羯)나라 종으로, 천자가 너를 써서 삼도 절도사를 시키시고 은혜와 총애가 견줄 데 없는데, (천자가) 네게 무슨 일을 섭섭히 했기에 배반하는가? 내가 대대로 당나라 신하로서 비록 네가 여쭈었던들 어찌 너를 따라 반역하겠는가? 내가 나라 위해서 도둑을 치다가 너 못 벤 일을 안타까이 여기는데 어찌 반역을 말하는가? 누리고 비린 갈나라 개야, 어찌 나를 빨리 죽이지 않는가?”

안녹산이 크게 성을 내고 안고경과 원이겸을 함께 매어 두고 뼈를 뜯어내게 했고, 두 사람은 죽기까지 그치지 않고 안녹산을 꾸짖었다. 이때 안(顔)씨 집안의 죽은 사람이 30명이 넘었다.

▶금자(金紫) : 금인(金印)과 자수(紫綬). 벼슬이 높은 사람이 차는 고관(高官)의 의장(儀章).
▶갈(羯) : 흉노족의 한 부족으로 산시성[山西省] 북부에 살던 유목민

 

[《오륜행실도 10폭병풍(五倫行實圖十曲屛風)》中 제5폭, 국립민속박물관]

 

 

참고 및 인용 : 국립민속박물관, 역주 이륜행실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삼강행실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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