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42 - 주부자시의도 2

從心所欲 2021. 10. 26. 12:08

《주부자시의도》의 5폭은 유실되었다. 흐름상 5폭은 '수신(修身)'이 주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5폭 <흰 구름과 누런 잎(白雲黃葉圖)>

[주희의 원시 : 入瑞巖道間(서암 길에 들어) 原韻]
淸溪流過碧山頭 맑은 계곡 흘러서 푸른 산모퉁이를 지나고
空水澄鮮一色秋 하늘 맑고 물 맑으니 한 가지 가을 빛깔.
隔斷紅塵三十里 세속 티끌 삼십 리나 멀리 바깥에 있나니
白雲黃葉共悠悠 흰 구름 누런 잎만 아득히 멀리 흘러가네.

[웅화의 주(註)]
審其幾 而無五 則身自修
"(선악의 미세한) 기미를 살펴 다섯 가지 편벽됨이 없다면 몸은 절로 닦여진다.
▶다섯 가지 편벽 : 친애(親愛), 천악(賤惡), 외경(畏敬), 애긍(哀矜), 오타(敖惰).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伯鐵王金好點頭 패철 왕금에 대해선 좋이 수긍하거니와
三皇五帝一春秋 삼황과 오제는 모두 하나의 춘추였었네
審却幾微從此路 사물의 기미 잘 살펴서 이 길을 따라가자
滿山紅樹興悠悠 만산에 붉은 나무에 흥이 유유하구나.

[오주석의 그림 추론]
원시와 화운시의 내용을 아울러 미루어 보면 <백운황엽도(白雲黃葉圖)>는 늦가을 날 맑은 계곡이 산기슭을 돌아 굽이굽이 멀리 이어지고 그 위로 흰 구름과 붉고 누렇게 물든 낙엽이 함께 떠가는 아스라한 풍경,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가는 주자(朱子)의 모습을 그린 산수인물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일에 선악의 기미를 살펴 근신하면서 맑은 가을 하늘과 그 아래의 가을 물길처럼 자신을 올바르게 지켜나가는 선비의 길을 상징한 것이라고 하겠다.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중 제6폭 <생조거상도(生朝擧觴圖)>, 명주에 수묵담채, 125 x 40.5cm, 호암미술관]

 

제6폭 <생신 아침에 술잔 올리다(生朝擧觴圖)>

[주희의 원시 : 壽母生朝(어머니 생신 아침에 장수를 빌다) 原韻]
敬爲生朝擧一觴 공손하게 생신 아침에 한 잔 술 올리오니
短歌歌罷意偏長 짧은 노래 가락 그쳤어도 뜻은 한량없어라.
願言壽考宜孫子 원컨대 오래 사시고 자손들도 편안하여
綠鬢朱顔樂未央 검은 머리 홍안으로 즐거움 길이 누리소서.

[웅화의 주(註)]
齊家之本 在父母其順
집을 다스리는 근본은 부모님께 공순함에 있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萱堂和氣捧瑤觴 어머님의 온화하신 안전에 좋은 술잔 올리오니
觴挹南山獻壽長 술잔에 남산처럼 오랜 장수를 담아 드립니다.
秖願年年如此好 다만 바라는 건 해마다 이처럼 편안하심이니
遲遲春日殿中央 긴긴 봄날처럼 궁전 중앙에 오래오래 계십시오.

[오주석의 그림해설]
그림을 보면, 늦더위가 남은 초가을 어느 날 큰 기와집에서 벌어지는 모친 생신 잔치장면이다. 돌담에 기대어 지은 집에서 차양을 치고 자리를 깔아 잔치를 벌이는데, 앞에는 힘찬 선묘로 등지를 묘사한 늙은 활엽수가 서 있고 뒤는 대숲이다. 좌정한 모친은 음식이 수북한 독상을 받았으며 수염 난 아들이 꿇어 앉아 술잔을 올린다.
아쉽게도 모친의 얼굴은 먹칠과 긁은 자국으로 손상을 입어 표정을 살필 수 없다. 자리에는 동생인 듯한 인물이 독상 앞에 앉았고 형 차지의 독상도 보인다. 뒤에 주자(朱子)의 젊은 아들과 아이 둘이 겸상을 했으며 앞쪽엔 두 부인이 앉았다. 부엌에서 쟁반을 든 여인이 나오고 마당에는 닭과 병아리 가족이 평화롭다. 그 옆 농기구를 두는 창고에는 괭이와 삽이 보인다. 화면 아래 별도의 담으로 분리된 초가집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겸상을 하고 앉았는데 쌍상투를 튼 동자가 술과 잔을 나르는 중이다. 초가 옆에 괴석과 파초, 그리고 작은 받침에 놓인 난초 괴석상이 깔끔하다.

화면 상부는 안개 속으로 잦아들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개울과 버드나무로써 이른 아침의 아슴푸레한 대기를 시사하고 공간감을 확보하였다. <백운황엽도(白雲黃葉圖)>는 모친의 생신날 축수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집안 식구들의 화목함을 묘사하고 있으며 깔끔한 건축물 묘사는 ‘바로 잡힌 집안'을 상징하는 듯하다.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중 제7폭 <총탕맥반도(蔥湯麥飯圖)>, 명주에 수묵담채, 125 x 40.5cm, 호암미술관]

 

제7폭 <팥국에 보리 밥 드네(慈湯麥販圖)>

[주희의 원시 : 蒸氏婦家(채씨 부녀의 집) 原韻]
慈湯麥評兩柏宜 팥 국에 보리밥이 서로 잘 어울리니
慈養丹圖姿療飢 파는 단전(丹田)을 기르고 보리는 요기가 되네.
莫道此中核味薄 이 가운데 무슨 재미냐고 말하지 마소.
前村辯右未債時 앞마을엔 오히려 밥 못 짓는 때도 있다 하네.

[웅화의 주(註)]
文王視民如傷 而無凍鑛
문왕(文王)은 백성들을 마치 아픈 데가 있는 것처럼 가엾게 여김으로 인하여 추위에 떨거나 굶주리는 백성이 없었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一風一雨與農宜 바람 불고 비 내림이 농사에 좋으니
士瑞黎民不阻飢 하늘의 조짐 보면 백성들 굶주리지 않겠네.
蒸屋生涯加注眼 가난한 집에 사는 양을 눈으로 본 듯하니
晦翁慈麥幾多時 회옹(주자)은 팥 국에 보리밥을 얼마나 드셨을까.

[오주석의 그림해설]
그림을 보면 하반부는 띠 울타리를 두른 ㄱ자형 초가집 정경이다. 들쳐진 창을 통해 간촐한 밥상을 앞에 한 주자(朱子)와 시중드는 부인이 앉은 모습이 보인다. 마당에는 쟁반을 받든 시녀가 막 들어서려는 참이다. 집 뒤편에는 베틀과 의자 두 개가 보인다. 마당에는 큰 오동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 커다란 괴석과 관음죽(觀音竹)이 있다. 집 옆에도 괴석과 대숲이 촘촘하다. 이것들은 집 주인이 살림은 여유가 없어도 품격이 도도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열린 사립문밖에는 수레와 앉아 쉬는 동자가 보인다. 화면 상반부는 개울을 따라 갈지(之) 자로 멀어지면서 주산(主山)에 이르는데 원근감이 뚜렷하여 깊은 공간감을 확보했다. 개울 위에 다리가 있고 버드나무 뒤로 초가집과 논이 보이며 주산아래 먼 마을이 자리하였다. 이것은 화제의 '앞마을엔 오히려 밥 못 짓는 일도 있다 하네'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어려운 백성의 처지를 늘 잊지 않는다는 주제를 위한 배려이다. 구도는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의 대각선 방향이지만 수평선도 병용하여 평담한 느낌을 준다. 주산(主山) 좌측 기슭의 연운 처리가 요령 있다.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중 제8폭 <가가유름도(家家有廩圖)>, 명주에 수묵담채, 125 x 40.5cm, 호암미술관]

 

제8폭 <집집마다 노적가리(家家有廩圖)>

[주희의 원시 : 石廩峯(석름봉) 原韻]
七十二峯都揷天 일흔 두 봉우리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一峰石廩庵名傳 한 봉우리에 돌노적가리[석름(石廩)]라는 옛 이름이 전하누나.
家家有廩高如許 집집마다 노적가리 있어 높기가 그만하니
大好人間快活年 쾌활한 세월 사는 사람들 너무 좋구나.

[웅화의 주(註)]
民富則禮義措 而天下平
백성이 부유하면 예의가 자리 잡히니 천하가 태평하리라.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漢陽三角際靑天 한양의 삼각산이 푸른 하늘에 맞닿은 곳
露積峯如石窟傳 노적봉 여기도 있어 돌노적가리라 전한다네.
積廩四方謌笑裏사방에 노적가리 쌓는 노래와 웃음 들려니
立春新帖願豊年 입춘첩 새로 써서 풍년을 소망하네.

[오주석의 그림해설]
<가가유름도>는 주제의 쾌활함에 걸맞는 활달한 구도로 되어 있다. 즉 아래로부터 비스듬히 갈지(之)자로 전개되면서 타작 장면, 집 뒤의 대숲에서 산기슭 윤곽선까지, 아지랑이 낀 부분, 석름봉을 비롯한 72봉우리 등이 삼각형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칠십 이봉(七十二峯)은 뾰족한 암봉이 병기(兵器)를 늘어세운 듯 날카롭게 솟았고 그 앞에 노적가리 모양의 석름봉이 우뚝 섰다. 그 아래는 아지랑이 여백으로 균형을 잡았는데 아랫변에 산기슭 윤곽선을 진하게 긋고 수목을 열 지워 세워 마감했다.

이 산기슭을 아지랑이로 처리한 수법은 1805년 작으로 추정되는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에 보이는 것과 같다. 그 아래 절벽 앞의 나무는 가지 굵기가 멋대로 넓었다 좁았다 하는 김홍도 만년의 특징적인 묘법을 보이는 평면적인 형태로서 맨 윗가지가 직각으로 꺾인 사의적(寫意的)인 묘법은 작가의 1805년 절필작 <추성부도(秋聲賦圖)>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마을의 나무는 선묘 자체는 구불구불하지만 가지가 무척 번다하게 묘사된 점에서 김홍도 초기 수지법(樹枝法)의 여운이 보인다.

아래는 한창 가을걷이로 바쁜 마을 풍경이다. 초가집과 당장으로 구획 지어진 이곳에서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키를 높이 쳐들고 곡식을 까부르는 이, 허리 아래로 키질하는 이, 흩어진 낱알을 쓸어 모는 이가 있고, 아기 젖 먹이는 아낙, 어린애와 광주리 옆에서 일하는 아낙과 서있는 아낙이 있다. 뒷집에서도 한 아낙이 아기를 안고 밖을 내다본다. 다시 우하(右下) 구석에는 창턱으로 얼굴을 내민 인물과 이야기하며 디딜방아를 찧는 사내와 아이의 도움을 받으며 절구 찧는 인물이 있다. 이처럼 많은 인물을 여기저기 요령 있게 배치하여 추수의 흥겨운 분위기를 그려냈다. 특히 석름봉의 형태와 꼭 닮은 노적가리가 곳곳에 벌려 있어 타작의 기쁨과 어울리는 운율감을 준다. 태평천하를 이룩하려면 백성의 곳간을 채워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는 1804년 개성에서 노인 64명을 초대하여 잔치를 연 장면을 그린 계회도(契會圖)이고, <추성부도(秋聲賦圖)>는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시와 글씨로 이름이 높았던 구양수(歐陽脩)의 추성부(秋聲賦)라는 시를 소재로 한 시의도(詩意圖)이다. 

 

[김홍도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 견본 담채, 147.2 x 63.3㎝ 1804년, 개인]

 

[김홍도 <추성부도(秋聲賦圖)>, 견본수묵담채, 56 x 214cm, 삼성리움미술관ㅣ보물 제1393호]

 

 

참고 및 인용 : 金弘道의 <朱夫子詩意圖>(오주석)

'우리 옛 병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풍 44 - 오륜행실도 2  (0) 2021.11.04
병풍 43 - 오륜행실도 1  (0) 2021.11.03
병풍 41 - 주부자시의도 1  (0) 2021.10.25
병풍 40 - 난정수계도  (0) 2021.10.22
병풍 39 - 금강산도  (0) 202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