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朱子)는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 ~ 1200)를 칭송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성 끝에 ‘子’자를 붙이게 되면 ‘스승’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주희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주희를 ‘주부자(朱夫子)’로 부르기도 하였다. 부자(夫子)는 덕행(德行)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높임말이다. 이전까지는 공부자(孔夫子)라 하여 공자(孔子)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던 호칭이었다. 그러니 주부자(朱夫子)는 주희를 공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호칭이다.
주자는 흔히 성리학을 집대성한 도학자로만 알려졌지만 옛 학자들이 그랬듯이 시인으로서의 역량도 뛰어났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시는 자연이나 무상한 삶을 읊는데 그치지 않고 시속에 학문적 메시지를 담는 경향이 있었다.
김홍도가 1800년에 8폭 병풍으로 제작하여 정조(正朝)에게 진상한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는 주희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시를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으로 해석하여 그린 그림이다.
김홍도가 새해를 축하하는 세화(歲畵)로 올린 이 병풍 그림을 보고, 정조는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지가 오래다. 30년쯤 전에 (나의)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 화원은 관례로 새해 초에 첩화(帖畵)를 그려 바치는 규정이 있다. 금년에 홍도는 물헌(勿軒) 웅화(熊禾)가 주(註)를 붙인 주자(朱子)의 시로 팔 폭 병풍을 그렸는데 주자가 남긴 뜻을 깊이 얻었다.”며 흡족해했다.
뿐만 아니라, 김홍도가 화폭에 원운시(原韻詩)를 썼으므로, 자신은 그에 더하여 화운시(和韻詩)를 써서, 늘 가까이 두고 교훈과 경계의 자료로 삼겠다고 하였다.
2005년 타계한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은 호암미술관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당시, 호암미술관 소장품인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오주석은 이 글을 통하여 원래 제목이 따로 없던 《주부자시의도》의 각 폭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고, 그 제목들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오주석은 논문을 쓰면서 편의상 ”주희의 원시(原詩), 웅화의 주(註), 정조의 화운시(和韻詩)를 종합하고 작품의 회화적 내용까지 감안하여 새로 명명하였다.”고 밝혔다.
‘어람용(御覽用) 회화(繪畵)의 성리학적 성격과 관련하여’라는 다소 난해한 부제가 붙은 오주석의 긴 글 속에서 《주부자시의도》를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최소한의 자료를 인용하고 요약하여 그림에 덧붙였다.
《주부자시의도》는 김홍도가 1800년 정초에 진봉한 것이니 전 해인 1979년에 그렸을 것이다. 그때 김홍도는 55세였다.
원래 8폭 병풍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1폭과 5폭이 유실된 상태다.
병풍은 현재 일본식으로 표구된 상태로 전하는데, 일본식 표구에서는 화폭 사변을 가지런하게 다듬어 병풍 바탕면 위에 그대로 얹는데, 이 과정에서 작풍의 네 가장자리가 약간씩 잘려 나갔으며 특히 위아래 부분은 좀 더 잘려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의 세부기법은 국왕에게 바친 어람용 작품답게 전반적으로 세부가 치밀하고 섬세한 점에 있다. 필치가 약간 갈필(渴筆) 기운을 띠고 있으면서 운필(運筆)이 여유로워 너글너글한 질감을 보이며, 쓸 곳에 집중적으로 쓰고 여타 부분은 넓은 여백으로 처리하고 있음은 노년의 특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인물묘사법은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 같은 남종(南宗) 화보풍을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복식의 인물을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선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은 김홍도만의 독특한 조형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으로 보인다.
병풍의 제1폭은 ‘사수 강변의 새 봄’이라는 뜻의 <사빈신춘도(泗濱新春圖)>이다. 그림은 없지만 주자의 원시와 남송말(南宋末)에서 원(元)나라 초기 무렵의 학자였던 웅화(熊禾)가 단 주(註), 그리고 주자의 시에 화운한 정조의 시는 자료로 남아있다.
[주희의 원시 : 春日(봄날) 原韻]
勝日尋芳泗水濱 좋은 날 꽃 찾아서 泗水 강가 나서 보니
無邊風物一時新 가없는 세상 경물 일시에 새롭구나.
等閒識得春風面 이따금 얼굴에 닿는 봄바람을 느끼나니
萬紫千紅摠是春 천만 가지 붉고 푸른 이 모두가 봄이구나.
[웅화의 주(註)]
物理之表裏精粗 無不到
만물 이치의 겉과 속, 정세함과 거칠음이 모두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瑤琴携過玉溪濱 좋은 거문고 지니고서 옥같은 물가 지나치니
樂意相關島語新 즐거운 뜻 서로 아는 양 새 소리도 새롭구나.
粟顆芋頭■理妙 곡식 알 토란 덩어리 싹트는 이치 묘하여라
渾然三十六宮春 온 세상 한 나라 궁실인양 봄이 찾아 왔구나.
그림에는 주희의 원시(原詩)와 웅화의 주(註)만 적혀있고, 정조의 화운시는 『홍제전서』에 <삼가 주자선생의 시에 화운함>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유실된 그림에 대한 오주석의 추론이다.
원시와 화운시의 내용을 아울러 미루어 보면, <사빈신춘도(泗濱新春圖)>는 봄날 화사한 꽃나무에 산들바람이 불고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강둑을 거니는 주자(朱子)가 봄의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는 정경과 동자가 거문고를 들고 뒤따르는 모습을 그린 산수인물화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시구(詩句) 중의 사수(泗水)는 일찍이 공자가 머물러 제자를 가르치던 노(魯)나라 지방에 있었으므로 남송(南宋) 사람인 주자가 실제로 가볼 수는 없었던 곳이다. 따라서 사수(泗水)는 공문(孔門)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꽃을 찾는다는 것은 곧 성인지도(聖人之道)를 구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과 그 안에 담겨진 우주의 이치를 추구하는 성리학적 열정, 즉 대학의 팔조목 가운데 ‘격물(格物)’을 상징한 것이라고 하겠다.
제2폭 <봄물에 큰 배 뜨다[春水浮艦圖]>
[주희의 원시 : 觀書有感(글을 읽고 느껴 짓다) 原韻]
昨夜江邊春水生 어젯밤 강가에 봄물이 불더니만
艨衝巨艦一毛輕 싸움배 거함조차 터럭 한 올인 양 가볍게 뜨네.
向來枉費推移力 그 동안 밀고 옮기려 들인 힘 잘못 애쓴 것이더니
此日中流自在行 오늘은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
[웅화의 주(註)]
義理熟時 知自致 而自然好
의리가 익은 때에 지(知)는 저절로 다다르게 되니 (그 때는 만사가) 자연히 잘 되어 간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庭前行樹太疑生 뜰 앞의 대나무가 의심날 만큼 쑥 자라니 가볍고
一羽輿薪孰重輕 (깃 하나) 무거운 것(장작 실은 수레) 경중 따져 무엇하리.
道不遠人人自遠 도가 사람 멀리 않고 사람이 스스로 멀리하는 것
回頭是岸岸頭行 고개 돌리면 곧 언덕이니 언덕으로 가야하리.
[오주석의 그림해설]
그림을 보면 근경의 강 언덕과 건너편 강둑이 푸르른 버드나무와 함께 일부만 묘사되어 있고 화면 대부분은 강과 바다로 되어 있다. 강폭을 넓게 묘사한 것은 화제에 보이듯이 봄물이 갑자기 불었기 때문이니, 강 건너편 버드나무 아래 둥지가 물에 잠겨있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좌하(左下) 기슭의 전함 세 척은 돛대만 보이고 건너편 앞쪽에는 네 척이 있는데 그 중 맨 좌측 것은 막 돛을 올리는 중이며 깃발을 보면 바람은 좌에서 우로 불고 있다. 전함 쪽으로 다가서는 작은 배에는 차일을 쳤고 책이 놓인 서안(書案)이 있으며 한 선비가 동자와 마주 앉았는데 고개를 돌려 전함들을 바라본다. 이 인물은 주자(朱子)일 것이다. 인물 묘사는 남종화법에 흔히 보이는 방식으로 두 눈을 점으로 콕콕 찍고 수염만을 간략하게 그렸다. 강둑뒤 쪽에 선체는 가렸으나 활짝 돛을 펼치고 막 떠나려는 전함 한 척이 있고 맨 위 화제 아래에 돛을 반쯤 펼치고 먼 바다로 떠나가는 전함 한 척이 있다. 이 배는 물 한 가운데 배치하여 자유롭게 보이니 화제에 보이는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를 묘사한 것으로 참 앎(眞知)에 도달한 경지, 즉 ‘치지(致知)’를 상징한다.
제3폭 <만고에 푸르른 산[萬古靑山圖]>
[주희의 원시 : 寄胡籍溪原韻(적계의 호선생에게 부침) 原韻]
罋牖前頭翠作屛 둥근 들창 앞 편으로 푸르름이 병풍 둘러
晩來相對靜儀形 저녁 되어 마주하니 우주 만물이 고요하네.
浮雲一任閒舒卷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겨 한가롭게 책을 펴니
萬古靑山只麽靑 만고의 청산이야 다만 그저 푸르르네.
[웅화의 주(註)]
誠意者 有主宰 而通動靜
성의(誠意)라는 것은 (마음에) 주재(主宰)함이 있어 (사물의) 정동(動靜) 간에 통하는 것이라.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玉鑰金關一疊屛 옥 자물쇤가 금 빗장인가 병풍 한 첩을 둘러놓고
主翁閒坐視無形 주인 늙은이 한가로이 앉아 무형(無形)을 바라보네.
春來物物皆生色 봄이 와서 사물마다 모두생명의 빛 띠었으니
就次牛山草樹靑 민둥산 된 우산(牛山)의 풀 나무 다시금 푸르르리.
[오주석의 그림해설]
그림 하변이 밭아 보여 다소 잘려 나갔다고 생각된다. 둥근 들창을 낸 기와집 앞에 낙랑장송 두 그루가 서로 닮은 모습으로 서 있는데 등지 끝은 주산(主山) 방향으로 휘어졌다. 그 뒤로 곧은 전나무가 보인다. 지붕의 사선이 좌하(左下) 구석을 메운 것처럼 맞은편 산기슭도 대칭을 이루면서 우하(右下)를 메웠다. 다만 왼편엔 경물이 가득하고, 오른편엔 텅 빈 깔끔한 마당에 학 두 마리가 한가롭게 서 있다. 뒤로 커다란 괴석 둘과 파초, 그리고 대숲이 있다. 들창으로 뒷모습이 보이는 선비는 고개를 들어 주산(主山) 봉우리를 바라본다. 집 주위에 ‘푸르름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주자(朱子)는 ‘저녁 무렵 우주 만물이 고요'한 것처럼 자신도 무심하다.
<만고청산도>에서 중심 주제는 주산(主山)이다. '우주 만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형태는 아래 부분을 연운(烟雲)으로 처리하여 마치 대지로부터 고요하게 솟아오른 듯한데, 안정된 삼각형 모양을 중심으로 여러 봉우리가 사선 방향으로 겹겹이 확 짜여 있다. 그 안정된 결구는 고요함과 견고성을 시사한다. 정중앙의 원산은 좌측으로 멀어지면서 거듭 축소되고 흐려져서 깊은 공간감을 조성한다. 원산은 실루엣만 묘사하였지만 윤곽선을 단정하게 덧댔다. 산이 정(靜)이라면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겼다는’ 주산 옆의 구름은 동(動)이다. 구름은 전통적인 선묘법에 의한 품격 있는 묘사로 되어 있다. 구도 자체는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이어지는 대각선 방향이 주가 되면서도 그 반대 방향으로 여백을 마련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뜻이 성실함[誠意]'으로써 우주만물이 그대로 수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제4폭 <달 가득 물도 가득[月滿水滿圖]>
[주희의 원시 : 武夷燿櫂歌第四曲(무이도가 넷째 굽이) 原韻]
四曲東西兩石巖 넷째 굽이 동서 양 편에 큰 암벽 솟았는데
巖花垂露碧㲯毿 암벽 꽃엔 이슬 달리고 푸르름이 드리웠네.
金鷄叫罷無人見 금빛 닭 울음 그친 후에 보는 이가 없으니
月滿空山水滿潭 공산(空山)에 달빛 차고 못엔 물이 가득하네.
[웅화의 주(註)]
正心只是 無昏味散亂
정심(正心)이란 다만 어둡고 어리석지 않아 어지러움이 없음이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幾曲淸溪幾曲巖 몇 굽이 맑은 계곡 몇 굽이의 암벽이냐
花盈盈處柳㲯㲯 꽃 넘치게 피어나고 버들 길게 드리웠다.
朗然魚鳥披襟久 명랑한 새와 물고기 마음껏 노닌지 오래인데
直到雲光瀉碧潭 구름 빛은 푸른 못에 바로 닿아 쏟아지네.
[오주석의 그림해설]
<무이도가(武夷棹歌)>는 1184년에 주자가 제5곡인 은병봉(隱屛峰) 아래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살면서 지은 작품으로, 예로부터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붓끝에 정이 묻어난다고 평가된 명시(名詩)이다. 따라서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수많은 작가들이 화운시를 제작했는데, 특히 대학자 주자를 흠모하는 유학자들이 즐겨 지었고 그 사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구곡(九曲)으로 명명한 예도 많았다. 위 주희의 시는 <무이도가>의 4곡(4曲)을 읊은 것이다.
그림을 보면 아래쪽이 깎여 들어간 대장봉(大藏峰)이 물가에 위태롭게 섰고 계곡 건너에 선조대(仙釣臺)가 있어 동서로 마주하였다. 그 사이로 가는 폭포 물줄기가 아슴푸레하다. 암벽에 매달린 꽃나무는 이슬을 머금었으며 위쪽에는 초목이 우거졌다. 원래 대장봉 암벽 아래에 굴이 하나 있어서 옛적에 그 안에서 닭이 읊었으므로 금계동(金鷄洞)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 금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보는 이도 없어 다만 공산영월(空山冷月)과 심담한수(深潭寒水)만이 적막함을 도운다.
<월계수만도(月滿氷滿圖)>는 단순한 조형요소로 이루어낸 걸작이다. 우측 대장봉을 진하게 처리하고 맞은편 선조대와 폭포를 매우 아스라하게 처리하여 대비시켰다. 특히 좌측 암벽의 대부분을 거의 여백으로 비워 두고 아래쪽만을 약간의 윤곽선과 연록색 태점(苔點)으로 묘사한 것은 놀라운 공간 감각이다. 대조적으로 대장봉 아래편 바위는 강한 농묵선 윤곽에 농묵의 태점으로 든든하게 처리했다.
암벽 위쪽의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연운에 맞닿았다. 원산은 단정한 윤곽선 위에 청색 선염을 베풀었고 보름달도 바깥을 담청으로 바림하여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구도를 보면 두 암벽을 사이에 두고 위편의 보름달 뜬 하늘과 아래편 깊든 못물이 서로 조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밝은 달빛 가득한 빈 산, 빈 하늘과 깊은 돈에 가득한 물의 고요하고 담담한 정경은 곧 '정심(正心)'의 경지를 상징한다.
참고 및 인용 : 金弘道의 <朱夫子詩意圖>(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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