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39 - 금강산도

從心所欲 2021. 10. 10. 09:11

보지도 못한 중국의 산수를 흉내 내고 상상 속의 이상적 풍경만 그리던 조선에서 우리 강토의 풍경을 조선적 화풍으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물꼬를 튼 것은 겸재 정선이다. 더욱이 그의 금강산 그림은 이후 문인이나 전문적인 화원을 막론하고 금강산 그리기 열풍에 빠져들게 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한 열기는 민간으로도 확대되면서 금강산을 주제로 한 많은 민화들이 제작되었다. 문인이나 전문 화원들의 그림이 감상을 목적으로 첩(帖)이나 축(軸)의 형태로 제작된 반면, 민간에서는 장식을 목적으로 한 병풍으로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민화 금강산도는 처음에는 정선이나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도상의 변용과 자유로운 표현 양식을 통하여 창의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또한 내용면에서도 초기에는 내금강만 다루다가 점차 외금강과 해금강까지도 담아내는 형식으로 양식과 구도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필자미상 금강산도 10폭 병풍(筆者未詳金剛山圖十幅屛風)>도 그런 병풍 가운데 하나다.

 

[<필자미상 금강산도 10폭 병풍(筆者未詳金剛山圖十幅屛風)>, 병풍크기 144.5 x 352.2cm, 국립중앙박물관]

 

1폭에는 외금강의 옥류동과 신계사, 2폭에는 해금강과 삼일포, 3폭에는 총석정과 해산정, 4폭에는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5폭에는 장안사, 6폭에는 혈망봉과 만폭팔담, 7폭에는 다시 외금강의 만물초(萬物草), 8폭에는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 9폭에는 정양사와 표훈사, 그리고 마지막 10폭에는 외금강의 구룡폭포를 그렸다.

금강산 유람의 특정한 경로와는 상관없이 화가의 구상에 따라 금강산의 명승과 명소를 임의로 배치했다.

 

[<필자미상 금강산도 10폭 병풍(筆者未詳金剛山圖十幅屛風)> 中 1폭과 2폭, 국립중앙박물관]

 

전하는 민화 금강산도 병풍들의 병풍차는 매우 다양하다. 아래는 대한제국 시절에 제작된 병풍이다. 수묵으로만 그려졌다.

 

[<금강산도10폭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中 1 ~ 5폭, 병풍전체 크기 161.3 X 437.4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도10폭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中 6 ~ 10폭, 병풍전체 크기 161.3 X 437.4cm, 국립민속박물관]

 

더 많은 장소를 담고 각기의 풍경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산의 유기적 연결을 끊어 낱개 그림처럼 만든 병풍차도 보인다. 

 

[<금강산도 10폭 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중 1 ~ 2폭, 병풍전체크기 148 x 497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도 10폭 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중 3 ~ 4폭, 병풍전체크기 148 x 497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도 10폭 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중 5 ~ 6폭, 병풍전체크기 148 x 497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도 10폭 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중 7 ~ 8폭, 병풍전체크기 148 x 497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도 10폭 병풍(金剛山圖十幅屛風)> 중 9 ~ 10폭, 병풍전체크기 148 x 497cm, 국립민속박물관]

 

민화에서의 금강산표현은 간략화 되고 도안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아래의 <금강산도>는 병풍이 아닌 병풍차의 형태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인듯하다.

 

[<금강산도>, 견본수묵, 한국민화박물관]

 

민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취당(翠堂) 홍순인(洪淳仁)의 일제 강점기 때 작품이다.

 

[홍순인 <금강산 병풍> 10폭 中 1 ~ 5폭, 병풍전체크기 180 x 410cm, 수원시박물관]

 

[홍순인 <금강산 병풍> 10폭 中 6 ~ 10폭, 병풍전체크기 180 x 410cm, 수원시박물관]

 

또 다른 일제강점기 때의 병풍인데 금강산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냈다. 또한 그러한 병풍차의 특징을 살리기 위하여 폭의 구분 없이 병풍을 펼치면 전체 그림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표구하였다. 이러한 표구방식은 왜(倭)의 영향이다.

 

[<금강산도 10폭 병풍>, 병풍전체크기 177.5 x 325cm, 국립민속박물관]

 

금강산의 풍경보다는 위치와 교통에 더 신경을 쓴 그림들도 있다. 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철도 길이 그려진 것, 한글이 병용된 것, 글이 좌에서 우로 쓰인 것 등을 감안하면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도> 6 ~ 10폭, 지본채색, 한국민화박물관]

 

[<금강산도> 1 ~ 5폭, 지본채색, 한국민화박물관]

 

 

참고 및 인용 :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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