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48 - 사현파진백만병도(謝玄破秦百萬兵圖)

從心所欲 2021. 11. 21. 09:13

<사현파진백만병도(謝玄破秦百萬兵圖)>는 ‘사현(謝玄)이 진(秦)나라의 백만 군대를 물리친 그림’이라는 뜻이다. 숙종 때에 궁중에서 만들어진 8폭 병풍으로 전투장면을 담았다. 그림은 크게 상하 둘로 나뉘어, 위쪽은 전투의 무대가 된 기묘한 절벽과 바위로 가득한 산이 자리 잡았고 아래쪽은 우측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는 전투장면이 그려졌다.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견본채색, 병풍 전체크기 178 x 429.6cm,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5호 16국 시대에 전진(前秦)의 3대 왕이었던 부견(符堅)은 양자강 이북을 평정하고 나자 양자강 이남에서 큰 세력을 차지하고 있던 동진(東晋)을 정벌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화북을 먼저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신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견(符堅)은 383년에 100만에 가까운 군사를 일으켜 동진 정복에 나섰다.

당시 동진(東晋)의 재상(宰相)은 사안(謝安)이라는 인물이었다. 사안은 40이 될 때까지 여러 번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회계(會稽)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왕희지(王羲之) 등과 교유하며 풍류를 즐기던 문인이었다. 유명한 353년의 난정수계에도 같이 참석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40이 넘은 중년에 벼슬에 나아가 재상에까지 올랐다.

전진(前秦)의 군대가 남하해오자, 동진에서는 사안이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이 되어 8만 군대로 전진의 100만 군대와 맞섰다. 사안은 동생 사석(謝石)을 전선대도독(前线大都督)으로 삼고, 조카 사현(謝玄)을 선봉인 전봉도위(前鋒都督)로 삼아 대응하였다. 결국 그 해 12월 안휘성(安徽省)의 서북부(西北部)에 있는 강인 비수(淝水)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전진의 왕 부견(符堅)은 혈혈단신으로 도망쳐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현파진백만병도(謝玄破秦百萬兵圖)>는 바로 이 비수(淝水) 전투를 그린 것이다.

병풍의 1폭부터 3폭까지는 동진(東晋)의 군대가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맹렬히 돌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1폭,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2폭,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3폭, 국립중앙박물관]

 

이어 4폭부터는 추격하는 동진(東晋)의 군대와 패주하는 전진(前秦) 군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동진(東晋)의 복병이 산속에서 치고 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4폭,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5폭,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6폭, 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7폭, 국립중앙박물관]

 

맨 마지막 폭인 8폭에는 붉은 옷을 입은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자신의 신하들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작가미상 사현파진백만병도 8폭 병풍> 中 8폭, 국립중앙박물관]

 

8폭의 왼쪽 상단에 쓰인 글은 숙종이 병풍 그림을 감상하고 직접 지은 글인 어제(御製)다.

 

晉時安石有高名 진나라에서 안석(安石)은 높은 명성이 있어
坐却苻堅百萬兵 앉아서 부견의 백만 군대를 물리쳤다.
靑岡一潰旌旗倒 청강에서 한번 무너지니 깃발이 거꾸러지고
鶴唳風聲走者驚 학의 울음과 바람소리에도 달아나는 자들이 어지럽구나.
歲在乙未 春題 을미년 봄에 제하다.
▶을미년 : 1715년(숙종 41년)

 

 

글 속의 안석(安石)은 사안(謝安)의 자이다. 병풍의 제목은 사현이 전진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되어있지만 숙종은 직접 전장에서 싸운 장수인 사현(謝玄) 대신에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안배한 사안(謝安)을 칭송했다. 숙종은 촉나라의 제갈량을 그린 그림에도 어제를 내린 일이 있다. 어쩌면 숙종은 조선의 왕으로써 저들처럼 나라를 잘 인도할 뛰어난 명재상(名宰相)이 조선에도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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