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제작의 확산과 함께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되던 무이구곡도도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병풍으로 제작되는 무이구곡도는 두루마리 형식에서 옆으로 펼쳐지던 풍경들이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구성이 변하게 된다. 허련(許鍊)이 남종화풍으로 그린 이 병풍은 마지막 폭에 무인(戊寅)과 소치칠십일지년(小癡七十一之年)이라는 관지가 있어 1878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첨절제사, 정산군수(定山郡守) 등을 지냈지만 구한말의 독보적인 초상화가로 더 잘 알려진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도 여러 점의 무이구곡도를 남겼다. 위 은 제일 처음에 무이구곡 총도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아래의 병풍 또한 특이하게 무이도가 10수를 거꾸로 써넣었다. 관직을 그만둔 이후 직업화가로 살면서 항일지사 최익현(崔益鉉)과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