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53

병풍 23 - 무이구곡도

병풍 제작의 확산과 함께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되던 무이구곡도도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병풍으로 제작되는 무이구곡도는 두루마리 형식에서 옆으로 펼쳐지던 풍경들이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구성이 변하게 된다. 허련(許鍊)이 남종화풍으로 그린 이 병풍은 마지막 폭에 무인(戊寅)과 소치칠십일지년(小癡七十一之年)이라는 관지가 있어 1878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첨절제사, 정산군수(定山郡守) 등을 지냈지만 구한말의 독보적인 초상화가로 더 잘 알려진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도 여러 점의 무이구곡도를 남겼다. 위 은 제일 처음에 무이구곡 총도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아래의 병풍 또한 특이하게 무이도가 10수를 거꾸로 써넣었다. 관직을 그만둔 이후 직업화가로 살면서 항일지사 최익현(崔益鉉)과 김..

우리 옛 병풍 2020.12.26

병풍 22 - 평생도 2

이 병풍은 현재 8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주인공이 벼슬길에 나아간 후의 관직 생활 부분이 더 포함되어 본래는 열두 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평생도와 비교해볼 때 돌 이후 글 배우는 장면과 회갑연, 치사(致仕)가 들어간 점에서 구성이 독특한 편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울퉁불퉁한 바윗돌이나 오동나무, 학, 사슴 등 복을 가져온다는 길상(吉祥)의 소재들이 많이 표현된 것은 평생도가 더욱 더 기복적으로 변해가는 증거로 보인다. 필치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정교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색감 또한 풍부하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병풍에는 장원급제 말고도 벼슬에 대한 것이 한림내각(翰林內閣), 도백(道伯), 정경(正卿), 훈련대장(訓鍊大..

우리 옛 병풍 2020.12.23

병풍 21 - 평생도 1

평생도(平生圖)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일생을 통해 겪을 수 있는 부귀영화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돌잔치인 초도일(初度日)부터 시작하여 혼례, 과거 급제, 관직 진출과 출세, 부부가 해로하여 결혼 60주년을 축하하는 회혼례(回婚禮)까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대부가 누릴 수 있는 평생의 중요한 사건과 의례를 담는다. 그러나 평생도는 기록화가 아니라 길상적 요소를 담은 일종의 풍속화이다. 이러한 평생도는 18세기 후반 풍속화의 발달과 더불어 탄생한 화제(畫題)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하는 평생도 중에서는 김홍도(金弘道) 작품으로 알려진 와 가 유명하다.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 ~ 1615)은 선조와 광해군 대에 대사성,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 1703 ~ 1771)..

우리 옛 병풍 2020.12.22

병풍 20 - 책거리(冊巨里)

책가도를 얘기할 때 늘 같이 등장하는 이름이 책거리(冊巨里)이다. 책거리에 대해서는 책가도의 상위 개념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책가가 없는 책가도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고, 책가도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각 박물관의 소장품 명칭을 보면 문방도, 책가도, 책거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에는 오히려 책가가 없는 것을 책가도로, 책가가 있는 것을 책거리로 이름 붙여진 경우가 더 많다. 처음에 누군가가 별 고민 없이 붙여놓은 이름을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때문으로 보인다. 책거리의 거리는 놀거리, 먹을거리, 볼거리에서와 같이 ‘내용이 될 만한 재료’를 뜻하는 말로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이는 명사이다. 거리(巨里)의 한자는 발음을 딴 이두식 표기라 한다. 궁..

우리 옛 병풍 2020.12.21

병풍 19 - 책가도(冊架圖)

책가도(冊架圖)는 서책과 문구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완상용 기물들을 함께 보여 주는 그림이라고 설명된다. 책가도라고 했으니 당연히 책가(冊架) 또는 서가(書架)가 있어야 하지만 책가가 없는 그림도 책가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흔하다. 정조의 어록(語錄)을 수록한 「일득록(日得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좌 뒤의 서가(書架)를 돌아보며 입시한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경들도 보이는가” 하시었다. 대신들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예전에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書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

우리 옛 병풍 2020.12.20

병풍 18 -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는 중국의 고동기(古銅器)나 자기(磁器)를 꽃가지, 과일, 문방구류 등과 함께 그리는 그림으로 동양의 정물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기명(器皿)은 살림살이에 쓰이는 그릇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절지(折枝)는 나뭇가지를 꺾는다는 뜻인데, 꽃을 그릴 때 가지만 그리고 뿌리는 그리지 않는 화법(畫法)을 말한다. ▶고동기(古銅器) : 구리로 만든 옛날 그릇이나 물건. 기명절지화는 중국에서 처음에는 그릇에 꽃을 꽂는 병화도(甁花圖)에서 시작하여 고동기가 그림의 중심이 되는 그림으로 발전한 화목(畵目)이다. 기명절지도는 특히 북송(北宋)대에 금석학(金石學)에 심취한 문인과 사대부들의 복고적 취향으로 인하여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북송의 사대부들은 중국 상(商)나라, 주(周)나라 시대의 제사에 ..

우리 옛 병풍 2020.12.19

병풍 17 - 백납도(百納圖)

한 병풍에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것을 담고 싶어 하는 욕구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백납도(百納圖) 병풍이다. ‘백납(百納)’은 ‘백가지를 꿰맨다’는 의미인데 그야말로 온갖 종류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모아 병풍으로 만들었다. 그림에는 산수, 화조, 고사(古事) 인물,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화재가 동원되었다. 두산(斗山) 정술원(鄭述源, 1885 ~ 1955)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병풍은 각 폭에 5 ~ 6점씩, 12폭에 64점의 그림이 들어있다. 이런 백납병은 꾸미는 품이 많이 들어 민화로 선호되던 장르는 아니었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상당히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백납도 병풍은 여러 사람의 그림을 모아서 꾸미기도 하지만, 위의 병풍은 한 화가가 화폭에 원, 팔각형, 부채꼴, 사..

우리 옛 병풍 2020.12.18

병풍 16 - 민화(民畵)

1891년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에 쓴 제발에는 병풍에 대한 당시의 풍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 병풍이라는 것은 대개 주련(珠聯) 두 쌍을 일러 병풍이라 하는데, 이것은 옛날에 일컫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우리나라의 풍습이 어그러져 6첩을 소병(小屛)이라 하고 8첩을 대병(大屛)이라 하는데, 요사이 또 악습이 더욱 심해져 12첩을 병풍이라 하고 그것을 나 누어 6첩 2병(二屛)을 만들고는 스스로 ‘기이하고 환상적인 묘계가 나보다 나은 자 누구인가’라고 한다 하니 그렇게 말하는 자의 면목(面目)이 가증스럽다. 무릇 병풍이라고 하는 것은 산수, 영모, 절지로 그린 것은 많지만 혜란(蕙蘭)으로 병풍을 만든 것은 드물다. 지금 12첩을 무엇 때문에 적다고 하는가? 그림을 구하는 자의 욕심 때..

우리 옛 병풍 2020.12.17

병풍 15 - 모란도(牡丹圖)

모란도는 중국에서 당나라 때부터 그려졌는데,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였다고 한다. 하나는 모란이 상서로운 꽃이자 성군(聖君)의 상징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왕실에서 서상화(瑞相畵)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송(北宋)의 유학자(儒學者) 주돈이(周敦頤)가 자신이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를 적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牡丹 花之富貴者]’라고 하면서부터 모란이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 되어 화조화로서의 모란도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모란은 북송 때부터 여러 예술품의 주요 의장문양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주돈이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들은 마땅히 많을 것이다[牡丹之愛 宜乎衆矣]’라고 한 대로, 여러 양식의 변화를 거치며 모란 그림이 기복화로 자리 잡게 ..

우리 옛 병풍 2020.12.16

병풍 14 -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2

학, 사슴, 봉황, 나비, 모란, 석류 등이 민화로 그려진 병풍이다. 아래 는 홍세섭이라는 사대부가 그린 것이다. 홍세섭(洪世燮, 1832 ~ 1884)은 정3품의 상계(上階)인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당상관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종조부 홍대연(洪大淵)이 선비화가로 알려져 있었고 공조판서를 지낸 부친 홍병희도 그림을 잘 그려 그림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부자가 합작을 하곤 하였다고 한다. 홍세섭은 산수와 영모를 잘 그렸고, 특히 영모화에서 독특한 감각의 구도와 묵법을 구사하였다고 한다. 이 는 원래 병풍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여덟 개의 내리닫이 족자로 꾸며져 있다. 오리, 백로, 따오기, 기러기, 까치 등을 소재로 하여 각각 두 마리씩 갈대, 수초, 매화 등과 함께 그려졌다. 소재는 전통적이지..

우리 옛 병풍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