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17 - 백납도(百納圖)

從心所欲 2020. 12. 18. 07:22

한 병풍에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것을 담고 싶어 하는 욕구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백납도(百納圖) 병풍이다. ‘백납(百納)’은 ‘백가지를 꿰맨다’는 의미인데 그야말로 온갖 종류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모아 병풍으로 만들었다. 그림에는 산수, 화조, 고사(古事) 인물,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화재가 동원되었다.

 

[<백납도 12폭 병풍(百納圖十二幅屛風)>, 견본채색, 병풍: 171.5 x 464.4cm, 국립민속박물관] 

 

두산(斗山) 정술원(鄭述源, 1885 ~ 1955)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병풍은 각 폭에 5 ~ 6점씩, 12폭에 64점의 그림이 들어있다. 이런 백납병은 꾸미는 품이 많이 들어 민화로 선호되던 장르는 아니었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상당히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백납도 12폭 병풍> 中 1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2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3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4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5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6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7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8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9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10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11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2폭 병풍> 中 12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병풍은 여러 사람의 그림을 모아서 꾸미기도 하지만, 위의 병풍은 한 화가가 화폭에 원, 팔각형, 부채꼴, 사각형, 등의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각기 다른 소재의 그림을 그려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당연히 화가가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래 <백납도 8폭병풍(百納圖八幅屛風)>은 백납도 병풍으로서는 특이하게 한 폭을 각각 상하로 나누어 화조도(花鳥圖)와 책거리 그림으로만 병풍을 만들었다.

 

[<백납도 8폭병풍(百納圖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21 x 160cm,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8폭병풍(百納圖八幅屛風)> 중 오른쪽 4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8폭병풍(百納圖八幅屛風)> 중 왼쪽 4폭, 국립민속박물관]

 

그림을 두 종류로만 한정한 것이 주문자의 요구 때문인지, 화가가 그릴 수 있는 화목의 한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병풍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8폭 병풍이라고는 하지만 4폭 병풍 2개가 1조를 이루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2폭 병풍을 6폭으로 둘로 나누어 만드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8폭 병풍을 나누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병풍 2첩을 1조로 구성하는 것은 원래 왜국 방식이었다.

 

[<백납도 10폭 병풍(百納圖十幅屛風)>, 면본수묵(綿本水墨). 병풍: 146 x 370cm,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0폭 병풍> 中 1,2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0폭 병풍> 中 3,4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0폭 병풍> 中 5,6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0폭 병풍> 中 7,8폭, 국립민속박물관]

 

[<백납도 10폭 병풍> 中 9,10폭, 국립민속박물관]

 

영모도, 산수도, 어해도, 화조도, 초충도 등을 함께 구성하여 그린 10폭 병풍이다. 그림에는 부분적으로 화제(畵題)가 묵서되어있고, '石南'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다. 이 병풍의 뒷면은 사군자(四君子)와 화조도, 노안도 등이 8폭으로 꾸며진 또 다른 병풍이다. 가성비와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 후기 이후에는 이처럼 양면으로 제작된 병풍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진본 그림이 아닌 탁본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저가의 병풍들에서 이런 유형이 많았다.

 

[<백납도 10폭 병풍(百納圖十幅屛風)> 뒷면, 8폭 병풍, 국립민속박물관]

 

병풍의 양쪽 끝 폭에 그림을 넣지 않고 8폭으로 만든 것은 접어서 보관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참고 및 인용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