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53

병풍 13 -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1

영(翎)은 새 깃, 모(毛)는 짐승 털이라는 의미 때문에 지금 영모(翎毛)는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의 분류 명칭으로 영모가 쓰이기 시작한 중국 북송 때에는 화훼와 결합되어 조류의 의미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다 화훼(花卉)와 영모가 화조(花鳥)로 통합되면서 화조의 의미에 길짐승인 축수(畜獸)를 포함시키기도 하고 제외하기도 하는 혼란을 거치기도 하였다가, 이후 중국에서 영모는 주로 금조류(禽鳥類)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조선에서도 영모도(翎毛圖)를 새만을 가리키는 의미로 받아들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중기부터는 금조류와 축수류 전반의 그림을 영모도로 지칭하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산수, 인물, 화초와 함께 영모가 4대 화문(畵..

우리 옛 병풍 2020.12.14

병풍 12 - 한궁도(漢宮圖)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은 누각도(樓閣圖)라는 이름이지만 역시 한궁도(漢宮圖)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도 각각 궁궐도와 한궁도라는 이름의 병풍들이 있다. 아래 두 병풍은 모두 그림을 액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바깥쪽에 여유를 두느라 병풍 양끝 폭이 안쪽 폭보다 크게 제작되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옛 병풍 2020.12.13

병풍 11 - 한궁도(漢宮圖) 1

조선 후기의 학자였던 이이순(李頤淳)의 『후계집(後溪集)』 5권에 들어있는 에는 1802년 당시의 창덕궁 대조전에 장식된 벽화와 편액, 병풍 등에 대하여 기술한 내용이 있다. 그 가운데 병풍에 대한 구절만 추려보면 이렇다. “ 당(堂)의 북벽 한 가운데 금전병(金箋屛) 두 쪽을 두었는데 대갈못으로 고정시켰다. 그 앞에는 10첩의 요지연도 병풍을 쳤다......동쪽 벽에는 모란도 병풍을 세우고........정중간의 한 칸 방 서쪽 벽에는 매화도 병풍을 세우고, 북쪽 벽에는 죽엽도 병풍을 세우고.......병풍이 무릇 십 여 부가 있는데, 금병(金屛) 하나는 일곱 마리의 학을 그렸고, 그 나머지는 신선이나 비룡, 또는 진기한 금수나 특이한 화초를 그렸는데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 글로 미루어보면 병풍을..

우리 옛 병풍 2020.12.12

병풍 10 - 산수도(山水圖)

중국에서 수나라 때인 7세기 전반에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산수화는 10세기인 중국 오대(五代)와 북송(北宋)대에 이르러 회화의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산수의 장엄한 위용을 그리는 것에 치중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산수화 역시 궁중과 민가에서 병풍으로 널리 제작되었다. 하지만 같은 산수도병이라도 쓰이는 병풍차(屛風次)에는 차이가 있었다. 공교함을 근본으로 하는 궁중의 병풍차(屛風次)가 장식화로서의 화려함과 위엄이 특징이라면, 사대부들의 산수도병은 차분하면서도 와유(臥遊)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또 서민들의 민화 산수도병은 소박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림들로 꾸며졌다. ▶병풍차(屛風次) : 병풍을 꾸미는 그림이나 글씨. 이 은 작가와 제작 연대는 알..

우리 옛 병풍 2020.12.11

병풍 9 - 백자도(百子圖) 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은 민화(民畵)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솜씨나 격조가 궁중 화가가 그린 그림에 못지않다. 통상 민화 백자도는 화원들의 그림보다 병풍의 크기가 작아지고 배경이 축소되며, 인물이 생략되는 소박한 분위기로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 병풍은 아마도 권세 있고 돈 있는 양반 집안에서 특별히 정성을 들여 제작한 것인가 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8폭 짜리 이다. 백자도가 또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 도식화된 백자도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길상화의 또 다른 형식인 문자도(文字圖)와의 절충양식이다. 신선의 인도 하에 동자들이 ‘수(壽)’, ‘복(福)’, ‘효(孝)’, ‘길(吉)’ 과 같은 글자 모양을 한 기화요초를 들고 오는 ..

우리 옛 병풍 2020.12.10

병풍 8 - 백자도(百子圖) 2

현재 전하는 조선 후기의 백자도(百子圖)는 대부분 6폭에서 10폭의 병풍 형태로 제작되었다. 백자도의 배경은 곽분양행락도와 거의 유사하게 나무, 태호석(太湖石), 꽃, 전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에는 오직 아이들만 등장하여 갖가지 놀이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각 장면마다 10명 내외의 남자아이들이 등장하여, 10폭 병풍이 되면 전체 아이들의 숫자는 실제로 100명 가까이 되기도 한다. 백자도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대략 8가지로 유형화되어 있다. 즉 장군놀이, 닭싸움, 연꽃 따기, 낮잠 자기와 새 놀이, 나비잡기, 관리행차놀이, 원숭이놀이, 매화 따기 등인데, 각 놀이는 모두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장군 놀이와 관리행차는 당연히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닭싸움은 닭대가리 위의..

우리 옛 병풍 2020.12.09

병풍 7 - 백자도(百子圖) 1

백자도(百子圖)는 자손 번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드러내는 기복화(祈福畵)이자 길상화(吉祥畵)이다. ‘백자(百子)’는 ‘백 명의 아들’이란 뜻이지만 여기서의 ‘백(百)’은 문자 그대로의 숫자라기보다는 완전수로서의 의미로 길상의 최대치를 가리킨다. 여기에 아들 ‘자(子)’자를 더하여 다산(多産), 그 중에서도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백동도(百童圖)’, 또는 ‘백자동도(百子童圖)’라고도 불린다. 백자도는 조선 초기부터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하는 것은 없고, 지금 전하는 백자도는 모두 조선 후기 이후의 것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색에 병풍 형태로 제작된 것들이다. 백자도 병풍은 혼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왕실에서는 새로 간택된 왕비와 왕세자빈의 처소에 놓였을 것이고, 반가(班家)나..

우리 옛 병풍 2020.12.08

병풍 6 -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는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곽자의(郭子儀)라는 인물이 노년에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곽자의(郭子儀, 697 ~ 781)는 당나라의 무신으로써 당 현종(玄宗)부터 숙종(肅宗) 연간에 걸쳐 9년간 당나라를 뒤흔들었던 안록산의 난에서 장안과 낙양을 탈환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워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이라고도 불렸다. 숙종을 이은 대종(代宗) 때에는 반란군을 회유하여 진압하고 잃은 영토를 회복하였다. 대종을 이어 당나라의 9대 황제가 된 덕종(德宗) 때까지 당나라의 4왕을 섬기며 두 번 재상에 오르고 덕종으로부터는 ‘상보(尙父)’라는 존칭까지 듣는 신분이 되었다. ▶상보(尙父) :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여 받들어 모시거나 그런 높임을 받는 사람. 곽자의는..

우리 옛 병풍 2020.12.07

병풍 5 -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에는 상업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조선의 그림 역사에 이처럼 다양한 백성들의 삶을 그린 그림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라 한다. 그림의 분위기는 완전히 우리나라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많다. 이런 류의 그림은 중국의 에 근원을 두고 있다. 는 북송(北宋) 시대의 수도인 변경(汴京)과 그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북송 말기인 1120년경, 장택단(張擇端)이 청명절(淸明節)에 흥청거리는 인파와 번화한 도성의 모습을 길이 5m가 넘는 화권형식(畵卷形式)으로 그렸다. ▶변경(汴京) : 지금의 허난성 개봉(開封). 북송(北宋:907~1127) 때의 수도였다. 변하(汴河) 옆에 자리해서 생긴 명칭이다. ▶청명절(淸明節) : 동지가 지난 후 104일이 되는 날로 24절..

우리 옛 병풍 2020.12.06

병풍 4 - 경직도(耕織圖)

조선의 궁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진상되고 열람된 화목(畵目) 중에 감계화(鑑戒畵)가 있다. 위정자(爲政者)인 왕과 왕세자가 올바른 윤리와 통치관을 확립하도록 돕고, 왕실과 종친, 신하와 백성의 교화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던 그림이다. 궁중의 대표적인 감계화로는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읊은 『시경(詩經)』「빈풍편(豳風篇)」칠월(七月)조를 그린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와 역시 『시경』 「무일편(無逸篇)」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은 일신의 즐거움이나 자기 몸의 편안함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그린 ‘무일도(無逸圖)’가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왕의 등극이나 세자의 탄신, 지방 행차 등의 기념 선물로 빈번하게 진상되었다. 빈풍(豳風)은 『시경』국풍(國風)에 있는..

우리 옛 병풍 202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