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7 - 백자도(百子圖) 1

從心所欲 2020. 12. 8. 11:24

백자도(百子圖)는 자손 번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드러내는 기복화(祈福畵)이자 길상화(吉祥畵)이다. ‘백자(百子)’는 ‘백 명의 아들’이란 뜻이지만 여기서의 ‘백(百)’은 문자 그대로의 숫자라기보다는 완전수로서의 의미로 길상의 최대치를 가리킨다. 여기에 아들 ‘자(子)’자를 더하여 다산(多産), 그 중에서도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백동도(百童圖)’, 또는 ‘백자동도(百子童圖)’라고도 불린다.

 

백자도는 조선 초기부터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하는 것은 없고, 지금 전하는 백자도는 모두 조선 후기 이후의 것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색에 병풍 형태로 제작된 것들이다. 백자도 병풍은 혼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왕실에서는 새로 간택된 왕비와 왕세자빈의 처소에 놓였을 것이고, 반가(班家)나 민가(民家)에서도 자손 번성을 원하는 집안에서 새로 맞이한 며느리의 방에 놓아주었을 것이다.

 

전하는 백자도들의 일관된 특징은 ‘완연한 중국풍’이다. 중국식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그려지는 아이들도 쌍상투[쌍계(雙髻)]머리에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백자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곽분양행락도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다. 곽분양행락도에 부분적으로 등장하던 동자가 점차 비중 있게 그려지다 백자도로 독립된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송(宋)나라 때부터 시작된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그린 ‘영희도(嬰戱圖)’ 또는 ‘동자유희도(童子遊戱圖)’가 우리나라에서 곽분양행락도와 혼합되어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곽분양행락도와의 연관성은 배제되지 않는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8폭 병풍>은 곽분양행락도가 백자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郭汾陽行樂圖八幅屛風)>, 151 x 452.2cm, 국립민속박물관]

 

이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에는 다른 곽분양행락도에 가득하던 여인들의 비중이 확연히 줄고 그 자리를 아이들이 채웠다. 곽분양행락도의 구성과 배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손 번성을 더 강조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1폭 그림 크기 71.5 x 42.3cm,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2폭 그림 크기 71.5 x 42.3cm,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3폭,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4폭,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5폭, 국립민속박물관]

 

병풍 전체 그림 속 아이들의 비중이 늘어난 것과는 달리, 정작 연회장면에서 늘 곽분양과 같이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 특이하다.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6폭,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7폭, 국립민속박물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8폭, 국립민속박물관]

 

통상의 백자도에는 아이들만 나온다. 그러나 이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에는 아이들의 비중이 늘기는 했어도 곽분양을 중심으로 하는 곽분양행락도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은 궁중회화가 아닌 민화이다.

 

 

 

참고 및 인용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