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나이 값

從心所欲 2022. 3. 31. 11:36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반박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앞세우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가치는 어디에서도 동의를 얻기 힘들다. 이제 나이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대우나 존경 같은 예우를 받는 조건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흔한 말로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진부한 과거의 통념을 거부했기 때문일까?

나이 먹은 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만 먹었지 존경받을 구석이 없는 까닭 때문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늙은 말[老馬]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 무사히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서양에도 gerassapience라는 말이 있다. ‘노인의 지혜’라는 뜻이다. 발전하면서 살아가는 데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오랜 삶에서 체득된 나이 먹은 이들의 생각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경험론적 관점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지식의 발전과 변화가 느렸던 농경사회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세상일을 경험한 노인들이 대우받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에서 노인들이 가졌던 과거의 지식들은 어디에도 쓸 곳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노인들이 늘어놓는 과거의 지식 자랑은 자칫 자신이 얼마나 옛 틀에 얽매어 사는 꼰대인지를 증명하는 사설로 끝나기가 쉽다.

그렇다고 노인이 앞서가는 새로운 지식에 무지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작 나이 먹은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온 세월에 비하여 오히려 터무니없이 부족한 지혜 때문일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그 지혜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무슨 비장의 묘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에 합당한 삶에 대한 태도와 그에 어울리는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다. 삶을 관조하는 안목도 없고 자신만의 일관된 가치관도 없이 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체면도 불사하는 모습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라도 존경받기 힘들다.

그런데 지금 나이 먹은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짓은 어린아이들이나 지키는 본능이다. 달아도 삼켜서는 안 될 때를 알고 써도 뱉으면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얻게 되는 지혜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그런 지혜를 말로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그나마 존경받을 여지라도 있을 것 아닌가! “나이 값을 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괜한 말씀이 아니다.

늙었다는 이유로 대접 받을 생각마라.

‘나이 값’ 못하는 삶은 존경받지 못해 마땅하다.

 

[소백산맥에 지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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