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서낭당

從心所欲 2022. 5. 18. 13:23

오래전 우스갯소리에 70대 노인의 성 기능을 도깨비불에 비유한 것이 있다.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본 적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쩌면 지금 세대에게 서낭당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시골 마을 입구에서 어렵지 않게 보았던 서낭당이 지금은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되어버렸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을 모셔놓는 신당(神堂)이다. 한자로는 각기 성황당(城隍堂)과 성황신(城隍神)으로 쓴다. 마을의 고갯마루나 한길 옆, 마을 어귀 등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서낭신으로 받드는 신수(神樹)와 돌무더기가 대표적 형태이다. 서낭신으로 모시는 큰 나무는 흰 종이와 오색의 천으로 치장되는데, 그 화려함과는 달리 서낭당의 분위기는 오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을 뜻하는 당()자가 들어가 있음에도 대부분은 당집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다.

 

사는 곳 근처에서 우연히 서낭당을 보게 되었다.

나무에 매달린 오색 천도 없고 돌무더기도 안 보인다. 그러나 지금도 누군가 이곳에 치성을 드리러 오는지 나무판자를 얹어놓은 단 위에는 향로와 촛대 한 쌍이 놓여있었고,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큰길에서 서낭당으로 오르는 작은 계단 위에는 성황당을 개축했다는 표지석이 있는데, 언제 개축했는지까지는 적지 않았다.

 

 

제단 뒤쪽에 큰 나무가 몇 개 있는데 어느 나무가 서낭신으로 모시는 나무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제단 앞에 있는 입석과 작은 제단 모양의 돌이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자취로 보아, 이 서낭당은 나무를 신으로 모셨던 서낭당이 아니라 이 입석(立石)을 서낭신으로 모셨던 곳인 듯하다. 이러한 입석을 수구매기라고도 하고, 돌서낭, 또는 선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입석의 크기는 1m 이상 2m까지도 된다는데 이 입석은 1m도 채 안 되고 폭도 꽤 좁은 편이다. 어쩌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돌이 밑으로 파묻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제단에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은 진짜 주인인 입석을 놓아두고 엉뚱한 나무를 향해 빌어 치성의 효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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