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53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어제 평택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세 분 소방관의 영결식이 있었다. 삼가 세 분의 명복을 빕니다. 졸지의 변을 당하여 커다란 상심에 빠져있을 가족 분들에게 들리지 않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위험한 일을 대신 맡아주신 그 용기에 감사하고,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혹시라도 가치관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당황한다. 가치관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짧은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치관을 이루는 요소는 많고 복잡하며 또한 유동적이기까지 하다. Netflix와 Disney+덕분에 길고긴 시골의 겨울밤이 짧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 오신다네.

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씨알이 잘 안 먹힐 소리지만 예전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말을 별 거부감 없이 세상의 진리로 알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나쁜 짓하면 벌 받는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면 안 돼’로 번안된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라는 캐럴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He's making a list, and checking it twice, gonna find out who's naughty or nice. He knows if you've been bad or good, so be good for goodness sake! 산타는 누가 못되게 굴고 누가 착하게 지냈는지를 꼼꼼이 ..

시골의 크리스마스

예전의 12월 길거리는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 찼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아무 상관이 없고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계획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공연히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저작권 문제가 거론되더니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길거리에 넘쳐나던 세모 분위기도 사라졌고, 12월의 거리는 그냥 춥고 차가운 겨울의 일부로 돌아갔다. 도시가 그럴진대 시골은 말할 것도 없다.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레지만 시골의 풍경은 평소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읍내 로터리에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안에 들어앉는 시골에서는 그걸 구경할 기회도 별로 없다. 도시의 교회 크리스마스 장식에도 못 미칠 만큼 소박하지만, 어둠이 가득한 ..

마시따밴드 돌멩이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때가 있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때이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이고 차라리 죽고 싶을 때이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자기 자신을 지킬 때이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란 없다. 그 시간만큼만 버티면 된다. 버티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려움은 내가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내가 당하는 어려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허상 따위에 지지말자.

Susan Boyle - Hallelujah

대림절 넷째 주일 아침. 간밤에 소복이 내린 눈을 내다보며 이 노래를 듣다보니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와 가사에 절로 경건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다윗 왕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노래를 지어 불렀지만 자신의 신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 유혹되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다윗의 찬양은 거룩한(holy) 할렐루야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broken) 할렐루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할렐루야! 로 찬송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찌 이것이 다윗에게만 해당되는 일인가! 우리가 그동안 드린 찬양 중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것이 몇이나 될까! 늘 쓰러지고 넘어지는 우리 자신이 가증스러워 차마 하나님 앞에 나가기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의지할..

회사후소(繪事後素)

논어 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라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繪事後素]." 자하가 말하였다. "예(禮)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너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공자의 말은 ‘소박한 마음의 바탕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은 좋은 바탕을 먼저 기른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사포서 별제였던 김홍도는 1775년 2월, 영조에게 이런 말을 ..

사과 공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간이 친구네 과수원에 불려 다닌 지가 벌써 4년째다. 그런데도 아직 사과 종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관심이 없어서일 것이다. 비교적 이름이 익숙한 아오리나 부사도 먹을 때 색깔로 어림짐작하는 수준이라, 과수원에 열린 사과를 보고 품종을 알아낼 실력이 없다. 그래서 아오리를 따야 하는데 아직 익지도 않은 다른 품종의 사과를 따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4년이나 드나들면서도 여전히 친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처지가 민망해서, 올해는 꼭 잘 기억하리라 다짐을 하며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중이지만, 겨우내 잊고 있던 나무들을 내년에 다시 본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볼 것 같지는 않다. 친구네 과수원엔 사과 품종이 많다. 아오리나 홍로, 부사와 같이 익숙한 이름부터 썸머킹, 시나노스위..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예전 우리나라의 자랑이 ‘높고 푸른 가을하늘’ 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방금 공항에 내린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한국의 가을하늘이 어떠냐?”고 묻고는 그 외국인의 입 발린 칭찬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싣곤 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Do you know...?" 이니 기자들은 정말 공부도 안 하고 취재준비도 안 하나 보다. 오랫동안 회색 구름과 비만 보다가 간만에 하늘이 개였다. 시골이라도 이런 색의 하늘 보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낯선 이 시리도록 파란 빛깔의 하늘이 어린 시절에는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밤이면 도시에서도 은하수는 물론 온 하늘을 덮은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꼭 누군가가 견우직녀 얘기를 꺼냈고 서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이 별 저별을 손가락질하며 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