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씨알이 잘 안 먹힐 소리지만 예전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말을 별 거부감 없이 세상의 진리로 알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나쁜 짓하면 벌 받는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면 안 돼’로 번안된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라는 캐럴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He's making a list, and checking it twice, gonna find out who's naughty or nice.
He knows if you've been bad or good, so be good for goodness sake!
산타는 누가 못되게 굴고 누가 착하게 지냈는지를 꼼꼼이 적어 두고 그걸 다시 또 확인까지 하니까 아무쪼록 착하게 지내라는 경고와 충고를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결국 착한 아이에게만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것이니 결국 “착한 일을 하면 복 받는다”는 예전 우리의 가치관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굴뚝타고 들어오는 산타의 동화가 깨진 것처럼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의 신화도 깨져버린 세상이 되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늘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반면, 몹쓸 짓을 하고도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은 도처에 흔하게 보인다. 그런 세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절대적 선(善)일 어떤 절대적 존재나 하늘의 섭리 또는 우주의 질서가 있다면 마땅히 산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듯이 모든 인간에게도 각자에 합당한 인과응보의 결과가 주어져야하는 것 아닌가? 착한 사람들이 다 복을 받지는 못할망정 하다못해 나쁜 놈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고 하늘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께서는 눈이 청결하시므로 악을 참고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고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또 다른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렇게 물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나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의 길이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입니까?“
악인이 득세하는 것 같이 보이는 세상은 이미 수천 년 전에도 있었던 일인 것이다. 악인이 잘되는 세상이 계속되었다면 지금쯤은 온 세상이 악으로 물들어있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착한 마음을 갖고 착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일에 하늘이나 절대적 존재자의 섭리를 배제한다면 아마도 착한 사람들이 계속 이 세상을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악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잠시 들렸다 떠나는 과객들이고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은 착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손님이 찾아와서 집을 어질러놓고 가면 치우는 것은 주인의 몫이다. 나쁜 자들이 세상을 어수선하게 만들어도 끝내 난장판이 되지 않은 이유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까닭이다.
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혹 선물을 못 받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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