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한번 뿐인 삶.

從心所欲 2021. 6. 28. 17:26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관리로 굴원(屈原)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초나라 왕족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리하였고 커서는 박학다식에다 언변까지 뛰어나, 젊은 나이에 일찍부터 높은 벼슬에 오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왕의 관심이 멀어지기도 하고,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가 결국에는 멀리 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굴원은 점치는 관리인 태복(太卜) 정첨윤(鄭詹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내게 의심되는 일이 있으니 원컨대 선생께서 결정을 내려주시오!”

그러자 정첨윤(鄭詹尹)은 점대를 바로잡고 거북 껍질을 깨끗이 털며 말했다.

“그대에게 무엇을 일러드릴까요?”

굴원이 말했다.

 

“나는 성실 근면하며 소박하게 충성해야 합니까?

아니면 세속에 영합하여 이런 곤궁을 면해야 합니까?

띠풀을 호미질하며 힘써 밭이나 갈아야 합니까?

아니면 고관과 귀인에 관직을 구하여 이름을 날려야 합니까?

바른 말하여 거리끼지 않으면서 몸을 위태롭게 해야 합니까?

아니면 세속의 부귀를 좇아 구차하게 살아 남아야합니까?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순진한 본성을 간직해야 합니까?

아니면 아첨을 하고 간사한 웃음을 억지로 웃으면서 아녀자처럼 섬겨야합니까?

청렴결백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스스로 청결하게 살아야합니까?

아니면 기름이나 가죽처럼 모나지 않게 익살이나 떨면서 아첨하여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까?

천리마처럼 기운차게 달려야합니까?

아니면 오리처럼 물 위를 떠다녀 파도에 실린 채로 떴다가 잠기면서 구차하게 제 몸의 안전만을 꾀해야합니까?

천리마와 함께 멍에를 메고 달려야합니까?

아니면 둔한 말의 꽁무니를 따라야합니까?

고니와 날개를 나란히 하며 날아야합니까?

아니면 닭과 오리랑 먹이를 다투며 살아야합니까?

어느 것이 길하고 어느 것이 흉합니까?

어느 쪽을 버리고 어느 쪽을 따라야합니까?“

 

일견 호기롭고 대단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사실 사람은 누구나 늘 이런 갈등과 물음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답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때에 따라서는 성실 근면을 택했다 후회하기도 하고, 또 시류에 영합했다가 두고두고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것이 삶이다.

 

굴원의 이런 질문에 정첨윤은, 점치는 도구인 시초(蓍草)를 내려놓으며 점치기를 거절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한 자라도 짧을 때가 있고 같은 한 치라도 길 때가 있으며

물건도 부족할 때도 있고 지혜도 밝지 못할 때가 있소.

괘(卦)의 숫자로도 미칠 수 없는 것이 있고 신령함도 통하지 못하는 때가 있소.

그대는 그 마음을 그대로 써서 그대의 생각대로 따라가시오.

거북점과 시초점으로는 정말로 이 일을 알 수 없겠소!”

 

우문현답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막상 이런 질문을 던졌던 굴원은 이후에 이도저도 아닌 제3의 길을 택했다. 돌을 안고 멱라수(汨罗水)에 몸을 던져 죽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굴원은 후세에 이름을 얻었다. 굴원의 나이 65세쯤이니 어쩌면 크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굴원은 현실을 피해 도망친 것에 불과하다. 자신이 해답을 찾지 못한 까닭에 결국은 죽음으로써 그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 뿐이다.

 

 

살다보면 중대한 기로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대학 수능시험이든, 취직 시험이든, 아니면 이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진급이나 돈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다. 고민이 될 때는 언제나 그 문제가 세상의 모든 일보다 중요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렇게 중대하였던 고민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왜 자신이 그렇게 심각했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에 직장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내 차를 받아서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했던 일이 있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음이 힘들었다는 것만 남았지,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회사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머릿속에 없다. 그처럼 기억에 가물가물할 정도의 일에 왜 소중한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했는지 돌아보면 어이가 없다.

 

인생이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다보면 수많은 어려움이 닥쳐오고 그 때문에 때로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죽을 각오로 하면 못할게 뭐냐?”는 말씀들을 하셨다. '죽기살기'란 말도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음을 대강은 짐작한다. 그래도 힘을 내자. 한번 뿐인 삶이다. 그 삶이 내게 주어지기까지는 내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는 수많은 우주의 섭리가 있었다.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갑자기 난데 없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더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해 돌아오는 결과에 너무 억매이지 말았으면 해서 하는 얘기다. 자신이 계획하고 바라던 길이 꼭 자기 인생의 최선의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또한 자신이 계획했던 일을 뜻대로 이루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세상에 많지 않다. 운동을 할 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내 몸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그때가 바로 근육이 만들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삶에서 겪는 그 힘든 고통을 내 삶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젊은이들에게는 안 믿겨지겠지만 세상의 어떤 일도 지나고나면 다 별 것도 아니다. 세상에 내 삶을 버릴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예전에 나라가 IMF로 힘들었던 시절,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란 노래의 가사는 여러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 강산에의 노래가 지금 힘든 이들에게 또 다시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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