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조중동은 왜 이 정권을 그렇게 까댈까?

從心所欲 2021. 7. 15. 11:55

과거 언론과 정부는 밀월기간이라는 암묵적 관행이 있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략 6개월 정도는 여간해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출발 때부터 두들겨 맞았고, 아직도 매일같이 맞고 있다. 물론 그 타격감이 예전 같지는 않다.

조중동은 왜 이 정부를 패는 일에 선봉장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조중동이 보수로 가장한 수구세력 또는 친일세력이라 서로 가치관이 안 맞아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러나 조중동은 원래 특별한 가치관이 있었던 신문들이 아니다.

 

조중동이 한 때는 자신들 입으로 정론지(正論紙)임을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이 나라의 대다수 언론들은 늘 권력에 유착하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던 이익집단일 뿐이었다. 그 권력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점기 때에는 일제에 동조하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그들에게 아부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권력이나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로 권력자와 국민에게 자신들이 가진 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잊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힘을 키웠다.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쪽의 편을 들어 상대방을 까고, 이쪽저쪽도 아니면 둘 다 까고, 대놓고 까기에 불리할 것 같으면 돌려 까기까지 시전하면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들은 모조리 깠다. 그리고 그런 까기 신공에 현혹된 독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통하여 사회적 권력을 획득했다.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이런 언론들에 나약했고, 국민은 언론이 진실보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이 조중동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버렸다. 1987년에는 김대중, 김영삼을 가리키는 ‘양김(兩金)’ 혐오론을 퍼뜨려 노태우대통령 만들기를 했고, 1992년에는 노골적 지원으로 김영삼을 대통령에 오르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들 수도, 바꿀 수도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힘을 이용하여 그들은 정치를 하고 영업을 했다. 기사는 거기에 동원된 도구였을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정론(正論)이 아닌 정론(政論)을 견지해왔다.

 

[1997년 11월 21일 대한민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 해 9월 18일과 11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 2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되었다. 1994년 이후 7년 만의 중앙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였다.

세무조사란 국세(國稅)에 관한 조사를 위하여 법인의 장부와 서류 등을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처벌을 목적으로 법원이 발부하는 수색영장을 요건으로 하는 '세무사찰'과는 다르다. 법인에 대한 정기적 조사 성격인 세무조사는 5년에서 10년에 한 번씩 받는 것이 상례이다.

당시 언론들 그 중에서도 조선과 동아는 정부에 회유와 압력을 가하며 어떻게든 이 조사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최정예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인력 400여 명이 조중동을 비롯하여 KBS, SBS, MBC 등 23개 중앙언론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세무조사결과, 23개 중앙 언론사와 그 계열기업 및 대주주 등의 총 탈루소득액은 1조 4천억 원에 가까웠고 법인세 등의 탈루액은 5천억 원을 넘었다.

 

뿐만이 아니라 언론사들이 허위 주식매매 계약서 작성을 통한 증여세 탈루, 위장전입과 증거인멸, 친인척·임직원 등의 차명계좌를 통한 돈 세탁, 공익재단을 이용한 우회 증여를 한 사실들이 밝혀졌다. 회사자금으로 아들의 해외유학 경비를 내거나 사저에서 쓰는 차량 운전기사 급여를 주는 것과 같은 사주들의 저급한 행태도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세청은 국민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법인과 사주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현 서울신문인 대한매일과 중앙일보, 한국일보에 대해서도 탈루 당시의 대표이사와 법인을 고발 조치했다. 그리고 조선 방상훈 사장, 동아 김병관 전 명예회장, 국민일보 조희준 전 회장이 구속되었다.

보광그룹과 중앙일보 대주주였던 홍석현(洪錫炫)은 이미 1999년에 탈세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구속된 조선, 동아 사주의 모습. 2001년]

 

중앙언론사들은 세무조사 이전부터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무조사 결과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사세를 총동원했다. 사주가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기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하여 사주를 구원하기 위한 충성 경쟁을 했다. 그러면서 연일 언론탄압이라는 기사를 써대며 피해자 코스프레로 국민을 호도하고 선동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주가 구속되는 결과 앞에서 그들이 느꼈던 울분이 어떠했을 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을 건드린 것에 화가 났고 결국은 정부를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그때 조선일보는 자사의 청와대출입기자를 철수시키며 더 이상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기사를 다루지 않겠다는 나름의 시위를 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김대중 정권이 끝날 때까지 청와대출입기자를 복귀시키지 않았다. 

 

대통령과 같은 이름이지만 조선일보에서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친 김대중 조선일보 ‘워싱턴 이사(理事)기자’는 2003년 워싱턴에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권은 짧고 언론은 길다.”

그들이 내부에서 어떤 다짐을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들은 칼을 갈았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자신들이 불법을 저지를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보다는 그들은 복수를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는 광기에 가득 찬 맹수로 변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원한이 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김대중 정부가 언론과 타협하고, 노무현 정부가 언론세력에 꼬리를 내렸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조중동은 또 권력의 실세와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들의 가치관은 언제나 '자사 이익'이 최우선이고 옳고 그름은 내 편이냐 아니냐로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무차별 폭격에도 두 정부가 끈질기게 버텼기에 그들의 원한과 복수심은 쌓여 갔고 결국 20년에 걸친 구원(舊怨)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20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소위 기득권에 반하는 세력에 저지른 만행은 이루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복수심에 몰두한 나머지 이성을 잃었고 이제는 무조건 상대방이 망하기만을 바라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자신들과 같은 배를 타지 않았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망해야 자신들의 옳음과 힘이 증명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든 국민이 분열되든 상관없이 자신들이 이겨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렇게만 되면 자신들이 예전에 누렸던 그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이 정부가 망하기를 바라며'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년 사이에 세상이 변해버렸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신문이라는 매체의 위상이 약화되었고, 그들이 쓰는 기사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폭발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사실에 기반한 기사가 아닌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기 위한 소설을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저들은 초조해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까 막 내지르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지피운 불이 꺼질까봐 타는 물건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잡아 불속에다 던져 넣는 중이다. 이들의 광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최후를 맞는 그 날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1999년 언론재단이 실시한 기자의식조사에서 “사주로부터의 편집·편성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가 81.9%에 달했다. 이에 기자협회보는 “기자들은 사주의 편집권 침해에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세습경영이 ‘한번 찍히면 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기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언론 사주들의 경영 전횡과 편집권 침해는 언론사주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제도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까지 언론사나 기자들이 이러한 상황의 개선을 위해 어떤 자그마한 노력이라도 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일이 없다. 오히려 그 사이 기자들은 기레기를 거쳐 기더기로 퇴화하였다. 그러면서 썩은 물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계란판 원료로 쓰일 지면에 똥칠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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