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심사정의 전이모사 3

從心所欲 2022. 3. 14. 12:02

심사정은 송나라 화가들을 거쳐 소위 원말(元末) 4대가로 불리는 예찬, 오진(吳鎭),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등의 그림도 따라 그렸다. 원말 4대가는 나이로 보면 황공망(黃公望, 1269 ~ 1354), 오진(吳鎭, 1280 ~ 1354), 예찬(倪瓚, 1301 ~ 1374), 왕몽(王蒙, 1308 ~ 1385)의 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찬 대신에 조맹부(趙孟頫, 1254 ~ 1322)를 넣기도 한다.

 

[심사정 <방황자구(倣黃子久)> 또는 <소림모정(疎林茅亭)>, 26.5 x 32.5cm, 간송미술관]

 

자구(子久)는 황공망(黃公望)의 자이다. 원래 이름은 육견(陸堅)이었으나 황씨(黃氏) 성을 가진 사람의 양자로 들어가 성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황공망은 조맹부(趙孟頫)의 영향을 받아 5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화법(畵法)을 배우고 미불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황공망의 이름으로 전하는 그림 가운데 오직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만이 그의 유일한 진적(眞蹟)으로 알려져 있다.

 

[황공망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33cm x 636.9cm]

 

심사정의 <방황자구(倣黃子久)>는 황공망의 법을 따라 그렸다고 하였지만, 역시 전체적으로는 심사정에 의해 변용된 기법으로 표현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성긴 숲의 초가 정자’라는 뜻의 <소림모정(疎林茅亭)>으로 불리는 이 그림은 심사정이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을 위해 그렸다는 <계산모정(溪山茅亭)>과 좌우만 바뀌었을 뿐 그림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심사정 <계산모정(溪山茅亭)>, 지본수묵, 42.5 x 47.4cm, 간송미술관]

 

또 다른 원말 사대가인 오진(吳鎭)은 매도인(梅道人), 또는 매화화상(梅花和尙)이라는 호를 썼으며 동원과 거연(巨然)뿐만이 아니라 마원(馬遠)과 하규(夏圭)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전하는 화가이다.

 

[심사정 <방매화노인(倣梅花老人)>, 견본수묵, 134.5 x 64.2cm,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 원말 4대가인 왕몽(王蒙)은 황학산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황학산초(黃鶴山樵)로 불린다. 조맹부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심사정 <방황학산초(倣黃鶴山樵)>, 견본수묵, 45.5 x 95.7cm,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은 원말 4대가에 이어 명나라 후기의 서예가이자 화가인 동기창(董其昌, 1555 ~ 1636)의 그림도 연마했다. 동기창의 자는 현상(玄常) 또는 현재(玄宰)로 알려져 있는데 심사정의 호 현재(玄齋)는 여기에서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기창은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을 개진하여 명말 청초 이후의 남종화 중흥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또한 형식주의를 비난하고 직관에 따른 표현법을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의 그림은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비평을 받고 있다. 

 

[심사정 <방동현재(倣董玄宰)> 또는 <하산욕우(夏山欲雨)>, 지본담채, 32.5 x 26.5cm, 간송미술관 ㅣ 비가 내리려는 여름 산]

 

이외에도 원나라 때의 문인이자 화가인 가구사(柯九思)의 그림을 방한 그림도 전한다.

 

[심사정 <방가구사(倣柯九思)>, 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중국산수화법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심사정의 이러한 중국 화가 따라 그리기는 심사정만의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심사정의 경우는 보다 폭넓게 다양한 중국 화가의 화풍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다른 남종화가들도 중국의 한 화파나 한 화가의 화풍만을 선호하지 않고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의 대표적 남종화가들의 화풍을 널리 섭렵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심사정을 비롯하여 이인상과 강세황 등은 중국의 남종화를 조선식으로 소화해낸 화가들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 및 인용 : 미술대사전(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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