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여산(廬山)

從心所欲 2022. 4. 11. 17:00

여산(廬山)은 중국 양자강 중하류의 남쪽에 위치한 장시성[江西省]에 있는 높이 약 1,600m의 산이라 한다. 주(周)나라 때의 현자(賢者)인 광속(匡俗)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숨어 살았는데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찾았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사라지고 빈 초막만 남아있었기에 ‘초막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여산(廬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가의 8선(仙)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때의 여동빈(呂東賓)이 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선인동(仙人洞)이라는 동굴도 있어 여산은 도교와 연관이 깊다. 그래서인지 여산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은일(隱逸)의 땅으로 이름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4세기 말에는 동진(東晋)의 혜원(慧遠)이 여산에 백련사(白蓮社)를 창건하고 수행도량으로 삼으면서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성지로 떠올랐고, 지금도 산 곳곳에 400여개의 마애석각(磨崖石刻)이 남아있다. 유교적으로는 정호와 정이 형제에게 성리학을 전수한 주돈이(周敦頤)가 만년에 여산의 연화봉(蓮花峰) 아래에 염계서당(濂溪書堂)을 짓고 제자를 가르쳤으며 그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뒤에는 남송의 주희(朱熹)가 이학(理學)을 가르쳤다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여산은 유불선 3교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또한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를 비롯하여 도연명(陶渊明), 소식(苏轼), 왕안석(王安石), 황정견(黄庭坚), 육유(陆游) 등과 같은 무수한 문인묵객 들이 4,000여 수(首)의 시를 남겼을 만큼 풍광으로도 유명한 산이다.

 

[<정선필 여산초당도(鄭敾筆 廬山草堂圖)>, 견본채색, 125.5 x 68.7cm, 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 정선이 그린 이 관념산수화는 여산과 관련된 고사를 소재로 한 것이겠지만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주희(朱熹)일 수도 있고, 여산(廬山)에 자주 올라 본인이 좌천된 울적한 심정을 달랬다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들을 흠모했던 정선 본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사정도 ‘여산의 은자(隱者)가 사는 곳’이라는 뜻의 <여산유서(廬山幽棲)>를 남겼다.

 

[심사정 <여산유서(廬山幽棲)>, 지본담채, 120.5 x 53cm, 간송미술관]

 

여산에 관한 시들 가운데서도 이백(李白)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시는 후세에 여산의 이름을 높인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보랏빛 안개 일고

遙看瀑布掛前川 멀리 보니 폭포가 냇물처럼 걸쳐있네.

飛流直下三千尺 물줄기는 3천척을 날아 곧추 떨어지니

疑是銀河落九天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가.

 

현재 중국에서는 삼첩천(三疊川)을 여산폭포라고 부르지만, 이백이 읊은 여산폭포는 수봉(秀峰)폭포로 알려져 있다.

 

[정선 <여산폭포도>, 견본수묵, 100.3 x 64.2cm, 국립중앙박물관]

 

長松鬱立千兵列 장송(長松)은 울창하여 천 명의 병사가 열을 선 듯하고,

怒瀑急噴萬馬喧 급히 쏟아지는 성난 물줄기는 만 마리의 말들이 우는 듯하다.

 

겸재 정선이 낙관 아래 적은 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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