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시령도(詩舲圖)

從心所欲 2022. 4. 24. 14:17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병조참판을 지낸 문신이자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려졌던 서화가이다. 9세부터 학문을 하면서 재동(才童 )이라는 평을 들었고, 자라면서는 시··화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실학자 이광려(李匡呂)에게서 시를 배워 조선 500년 이래의 대가라는 평을 얻었으며, 강세황 문하에서 묵죽을 배워 조선의 3대 묵죽화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신위 <묵죽 8폭병>, 각폭 108.5 x 27.5cm, 개인]

 

신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시와 그림을 잘했다고 한다. <시령도(詩舲圖)>는 신위가 자신의 제자를 위하여 두 아들과 함께 만든 두루마리 형태의 서화 합작도이다.

 

[신위,신명준,신명연 <시령도>, 축 34.1 x 261.2cm, 국립중앙박물관]

 

신위가 행서로 시령도(詩舲圖)’라는 제목을 썼으며, 큰아들 신명준이 그림을 그리고 첫 번째 발문을 쓴 뒤, 둘째 아들 신명연이 또 다른 글을 적었다. 그림을 그린 신명준의 발문에 이 <시령도>가 제작된 내력이 들어있다.

 

이시령(李詩舲)이 나이는 약관에 지나지 않으나 하는 말이 속되지 않고 붓을 들면 신(神)이 깃든 것 같다. 나의 아버지[家大人]께서 그 재주를 사랑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주었으니 이름은 학무(學懋), 자는 경소(景蘇) 또 다른 자는 시령(詩舲)이라 하였다. 시의 정수는 반드시 소동파를 거쳐야 함을 권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그림을 그리고 또 예부랑 유상(劉商)의 유리시경(琉璃詩境)을 일러준다.

갑오년(1834) 중원절(中元節, 음력 7월 15일) 소하학인(少霞學人)이 청추실(聽秋室)에서 그리고 쓰다.

 

글에 따르면 <시령도>는 이학무(李學懋)라는 젊은이를 위한 것으로, 그의 자는 원래 경소(景蘇)였는데 신위가 그의 시에 관한 공부를 독려하는 뜻에서 시령(詩舲)이라는 자를 새로 지어주고 이 서화 합작도를 만들어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시령(詩舲)시를 실은 작은 배라는 뜻이다.

 

[신위 행서 '시령도(詩舲圖)' : 자하(紫霞)라는 호 대신에 '늙은 자하' 라는 의미의 노하(老霞 )가 경소를 위하여 썼다고 적었다.]

 

신명준이 시의 정수는 반드시 소동파를 거쳐야 함을 권면한 것.”이라고 한 것은 아버지 신위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신위는 처음에 성당(盛唐)의 시를 배웠지만,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다가 옹방강(翁方綱)을 만나고 온 뒤로는 소식(蘇軾)과 두보(杜甫)의 시에 심취하여 평생의 화두로 삼아 정진했었기 때문이다. 옹방강은 추사 김정희가 북경에 갔을 때 만나서 김정희의 서법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시령도> 그림도 소식이 적벽(赤壁)을 선유(船遊)하고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후적벽부(後赤壁賦)>는 이렇게 시작된다.

 

是歲十月之望 그해 시월 보름
步自雪堂 설당(雪堂)에서 걸어서
將歸於臨皐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는데
二客從予 두 객(客)이 나를 따라왔다.
過黃泥之坂 황니고개를 지나는데
霜露旣降 이미 서리와 이슬이 내려
木葉盡脫 나뭇잎은 모두 지고 없었다.
人影在地 사람의 그림자 땅에 뚜렷하여
仰見明月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고
顧而樂之 주위를 돌아보고 즐거워하며
行歌相答 걸어가면서 서로 노래 불러 답한다.

已而歎曰 노래 끝에 내가 탄식하기를,
有客無酒 객은 있는데 술이 없고
有酒無肴 술이 있다 해도 안주가 없구나
月白風淸 달 밝고 바람 맑으니
如此良夜何 이 좋은 밤을 어찌하랴?

 

[신명준 그림 <시령도>]

 

이 그림이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소재로 했다는 단서는 뒤의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山高月小 산이 높아 달은 작고
水落石出 강물이 줄어 돌들이 드러나 있다.

 

산이 높아 달은 작고[山高月小]’라는 구절대로 배 뒤편의 높은 벼랑 위에 동전보다 작은 달이 그려져 있다. 또한, 화폭 왼쪽 위에 날아가는 학 한 마리는 다른 구절에 묘사된 외로운 학[孤鶴]’의 모습이다.

 

時夜將半 때는 거의 한밤이 되어
四顧寂寥 사방을 보니 적요한데
適有孤鶴 문득 외로운 학 한 마리가
橫江東來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날아온다.
翅如車輪 날개는 수레바퀴처럼 크고
玄裳縞衣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입은 듯
戛然長鳴 길게 소리 내어 울며
掠予舟而西也 배를 스쳐 서쪽으로 날아갔다.

 

신명준이 발문에 언급한 예부랑 유상(劉商)의 유리시경(琉璃詩境)’은 당나라 때에 예부중랑(禮部中郞)을 지낸 유상(劉商)의 시를 가리킨다.  

 

虛空無處所 허공은 일정한 처소가 없어, 
髣髴似琉璃 유리와 방불하도다. 
詩境何人到 어느 누가 시경(詩境)에 이르렀던가.
禪心又過詩 선심(禪心) 또한 시를 지나치는 것이라. 

 

삼부자가 이 <시령도>를 만들어 준 이학무(李學懋)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중인계급의 젊은 시인 지망생이라는 정보 외에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당파나 나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예술 세계를 넓혀 나갔던 신위가 신분 낮은 젊은이의 재능까지도 깊이 아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참조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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