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겸재 정선 귀거래도

從心所欲 2022. 6. 14. 10:50

귀향은 외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는 것을 특별히 귀거래(歸去來)라고 한다. 1,500여 년 전 중국의 도연명이 잠시 맡았던 현령 자리를 내놓고 귀향하며 썼다는 <귀거래사(歸去來辭)>란 시로 인하여 명성을 얻게 된 말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고금을 통하여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복잡한 세파에 시달리는 괴로운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끊이지 않고 존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귀촌을 생각하는 심정과 크게 다른 바가 없다. 지금보다는 훨씬 단순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옛날의 삶도 녹녹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라건대, 이제 세상과 사귐도 그만두고
세속과 어울림도 끊어버리리라.
세상이 나와는 서로 어긋나니
이제 다시 수레를 메고 세상에 나가 무엇을 구하랴.

 

살다 보면 도연명이 읊었던 이 구절 그대로의 심정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돌아가리라! [歸去來兮].”

 

그런 때에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구절인 돌아가리라! [歸去來兮]”라는 구절을 접하면 이어지는 글을 읽기 전에라도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고향이 시골이 아닌 사람들도 이 말에는 왠지 향수가 느껴지고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자신의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듯싶다.

 

 

그래서인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이 귀거래도(歸去來圖)라는 이름으로 그려졌다. 그런 귀거래도의 대부분은 <귀거래사>의 다음 구절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침내 멀리 집 지붕 마루가 보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니,
집일 하는 아이 반갑게 맞고
어린 자식들은 대문에서 기다리네.

 

[오원 장승업 산수화 8폭 연작 中 <귀거래도>, 136.7 x 32.4cm, 간송미술관]

 

지금 전하는 귀거래도들은 대개가 이처럼 배를 타고 집에 도착하는 도연명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선의 귀거래도 3점은 조금 다르다.

 

[겸재 정선 귀거래도 中 문정부이전로 (問征夫以前路), 견본수묵, 24.5 x 22.5cm, 겸재정선 미술관]

 

화제로 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고향까지 남은 길을 묻고[問征夫以前路]’는 집으로 돌아갈 결심과 돌아오는 노정을 묘사한 <귀거래사>의 첫 번째 단락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귀 탄 도연명이 행인에게 고향까지의 길을 물어보는 모습이 그려졌다.

 

[겸재 정선 귀거래도 中 운무심이출수(雲無心以出岫), 견본수묵, 24.5 x 22.5cm, 겸재정선 미술관]

 

운무심이출수(雲無心以出岫)는 집으로 돌아와 얻은 편안함과 평화로움 또 그 속의 즐거움을 노래한 두 번째 단락에 나오는 구절이다.

 

時矯首而游觀 때때로 고개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雲無心以出岫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날다가 지친 새는 둥지로 돌아올 줄 아네.

 

날아다니다가 힘에 지친 새가 둥지로 다시 돌아온다는 구절은 도연명 자신을 빗댄 구절일 것이다.

 

[겸재 정선 귀거래도 中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 견본수묵, 24.5 x 22.5cm, 겸재정선 미술관]

 

무고송이반환(撫孤松而盤桓)은 위의 구절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景翳翳以將入 뉘엿뉘엿 해가 선 너머로 지려는 때
撫孤松而盤桓 홀로선 소나무 어루만지며 주위를 서성이네.

 

아쉽게도 겸재정선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귀거래도는 이것으로 끝이다. 정선이 애초에 6점이나 8점은 그렸을 텐데 나머지는 유실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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