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236

두꺼비와 선인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배와 등에 난 불규칙한 돌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가 꺼려지는 동물이다. 거기다 두꺼비는 뱀도 잡아먹는다는 소리도 있어 흉물스러운 느낌도 있다. 그런데 복스럽고 튼실하게 생긴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떡두꺼비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은 두꺼비를 안 좋게만 본 것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의 상표도 두꺼비이다. 삼국유사에는 두꺼비가 지장법사가 가져온 불보(佛寶)를 보호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화(寓話)나 민담, 민요에는 두꺼비가 슬기롭고 의리 있는 동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또한 두꺼비를 부와 재물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두꺼비 꿈은 길몽이나 태몽 등으로 인식되어왔다. 어쩌면 이런 인식은 중국에서 전해지는 고사(故事)에 기인한 ..

우리 옛 그림 2022.01.24

김홍도 남해관음도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의 관세음보살이 관음보살이다. 한자로 ‘南無’로 쓰는 ‘나무’는 귀의(歸依)한다는 뜻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법화경에는 어려움을 당한 중생이 그 이름을 부르면 관음보살이 즉시 33종류의 화신으로 변해 그들을 구해준다고 되어 있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하는데 중생들이 처한 상황에 맞도록 관음보살이 몸을 바꾸거나 자세나 옷을 바꾸어 33신(三十三身)의 형상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림으로 많이 그려진 수월관음(水月觀音) 역시 관음보살의 33신 가운데 하나이다. 수월관음은 물에 비친 달을 내려다보는 형상의 보살..

우리 옛 그림 2022.01.22

유운홍 풍속도

시산(詩山) 유운홍(劉運弘)은 조선 후기의 도화서(圖畵署) 화원이다. 1797년생으로 김홍도보다는 50여년, 신윤복보다는 40년 뒤에 태어나 순조에서 헌종을 거쳐 철종 대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20년이나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 봉직했던 그는 산수, 인물, 화조를 비롯하여 풍속화까지 다양한 화목을 두루 다뤘다. 하지만 그의 풍속화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풍을 따랐다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닌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이뤄내지 못하면 늘 아류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기 힘들다. 그가 남긴 풍속화 중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이 이다. 툇마루에 모여 있는 3명의 기녀를 그린 이 그림은 배경을 상세히 그린 것이 신윤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있다. 기녀라는 주제와 ..

우리 옛 그림 2022.01.04

김알지의 탄생설화 그림

설화에 따르면 신라 초기에 알에서 태어난 인물이 셋 있었다. 서라벌이라는 나라를 세운 박혁거세(朴赫居世), 신라 4대왕인 석탈해(昔脫解), 그리고 김알지(金閼智)이다. 그 가운데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된 김알지에 대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신라 4대왕인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金城) 서쪽의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

우리 옛 그림 2021.12.28

김수철 5 - 김창수

학산(鶴山) 김창수(金昌秀)는 한동안 생애와 활동 내역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로 전해져왔다. 아직도 업데이트되지 않은 많은 글들에는 화가 김창수(金昌秀)에 대하여 주로 산수 작품이 전해지는데, 동시기에 활동했을 김수철의 그림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러나 유홍준이 2013년에 펴낸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3」이란 책에서 “2011년 동산방화랑에서 열린 에 학산(鶴山)과 김수철 도장이 나란히 찍힌 작품이 나와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지금은 김창수와 김수철을 동일인물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김수철이 처음에는 학산(鶴山)이라는 호를 쓰다가 뒤에 북산(北山)으로 바꾸었으며, 이름도 김창수, 김수철, 김수혁(金秀赫) 등 여러 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 옛 그림 2021.12.21

김수철 4 - 화훼

전하는 김수철의 그림은 산수화와 함께 화훼 그림이 많다. 화훼화 역시도 김수철의 특징이라 할 간결한 필선과 현대수채화 같은 색채감각이 돋보인다. 《북산화사(北山畵史)》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20폭짜리 화첩이다. 화첩에 ‘기미년 석관전사(石串田舍)’라 적혀있어 1859년에 김수철이 살던 지금의 성북구 석관동에 해당하는 동대문 밖 한적한 산 밑 돌곶이[石串]의 집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이다. 김수철은 매화와 국화 또는 연꽃처럼 군자(君子)의 아취를 나타내는 꽃 외에도 맨드라미나 능소화처럼 마당에 흔히 심는 꽃들까지 다양하게 그렸다. 일반적으로는 로 소개되고 있으나 정작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로 소개하고 있는 두 폭의 그림을 보면 다시 한 번 김수철의 뛰어난 감각에 감..

우리 옛 그림 2021.12.16

김수철 3 - 담채산수

서양에 유토피아(Utopia)가 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이다. 그런데 서양의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의 개념이지만 동양의 무릉도원은 ‘어딘가에는 꼭 있을 것’이라 믿어지고 또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념이다. 김수철이 그린 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있다. 種桃隨處武陵春 복숭아나무 심은 곳마다 무릉도원의 봄이거늘 那必雲中去問津 어찌 곡 구름 속으로 들어가 나루터를 묻는가. 相見當年源裏客 그때의 도원(桃源) 속 나그네를 만나보니 多應本分力田人 본분이 응당 농사에 힘쓰는 사람이로세. 굳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복숭아나무를 심어놓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속 아래쪽 ..

우리 옛 그림 2021.12.10

김수철 2 - 북산산수화첩

김수철은 산수화와 화훼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하는 김수철의 산수화들은 남종화풍(南宗畫風)이다. 그러나 김수철의 산수화는 전통적인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로 단순하게 윤곽을 잡고 맑은 담채(淡菜)로 색을 가미하며 담백하게 그리는 특징을 지녔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그의 산수화 특징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산산수화첩(北山山水畵帖)》에도 잘 드러나 있다. 첩에는 미처 채색하지 못한 그림도 하나 함께 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옛 그림 2021.12.06

김수철 1 - 겨울 산수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은 추사 김정희가 중인 출신의 서화가들을 지도하고 품평했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런 자리가 마련된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추사가 제자들을 지도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참석자 중에는 익히 추사의 제자로 알려진 소치(小痴) 허련(許鍊)과 고람(古藍) 전기(田琦) 같은 인물도 있으나 이때 말고는 딱히 추사와 연결할만한 구석이 없는 인물들도 다수 있다. 이 모임이 있었던 시기에 대해서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가기 전인 1839년이란 것이 학계의 통설이었으나, 2003년에 원본이 발견됨에 따라 추사가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인 1849년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정희의 나이는 64세였다. 1849년 여름 추사는 약재상을 운영하던 전기의 서재인 이초당(..

우리 옛 그림 2021.12.04

정선 수성구지

정선의 라는 그림이 있다. ‘수성(壽城)의 옛 터’라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곳을 ‘궁궐 여인들의 내불당(內佛堂)이었던 인수(仁壽), 자수원의 옛터로 짐작되는 곳’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내불당(內佛堂)’은 태조가 왕실의 불교신앙을 위하여 창건한 절로 경복궁 내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수성(壽城)은 경복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선의 그림에 나타난 지역은 누가 보더라도 경복궁 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뒤에 있는 산에 검은 색으로 칠해진 바위는 얼핏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연상케 하여, 인왕산의 동편 자락일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는 백악산의 서편에도 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백악산 자락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풍수를 따지던 그 때에 서향으로 건물을..

우리 옛 그림 202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