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두꺼비와 선인

從心所欲 2022. 1. 24. 07:23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배와 등에 난 불규칙한 돌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가 꺼려지는 동물이다. 거기다 두꺼비는 뱀도 잡아먹는다는 소리도 있어 흉물스러운 느낌도 있다. 그런데 복스럽고 튼실하게 생긴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떡두꺼비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은 두꺼비를 안 좋게만 본 것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의 상표도 두꺼비이다.

삼국유사에는 두꺼비가 지장법사가 가져온 불보(佛寶)를 보호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화(寓話)나 민담, 민요에는 두꺼비가 슬기롭고 의리 있는 동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또한 두꺼비를 부와 재물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두꺼비 꿈은 길몽이나 태몽 등으로 인식되어왔다.

어쩌면 이런 인식은 중국에서 전해지는 고사(故事)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중국 화북(華北)의 중심지대를 지배했던 5대(五代)의 후량(後粱) 때에 유해(劉海)라는 사람이 있었다. 신선전(神仙傳)에 따르면 그는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실존인물로 호를 해섬자(海蟾子)라 하였다. 해섬자(海蟾子)의 ‘섬(蟾)’자는 두꺼비를 뜻하는데 그의 곁에는 수호신처럼 함께하는 두꺼비가 있었다. 그 두꺼비는 특이하게도 발이 셋뿐이었지만 유해를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영물이었다. 신선이 된 유해는 이마에 머리카락을 내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두꺼비를 타고 다니면서 가난한 백성에게 돈을 나누어 주어 하마선인(蝦蟆仙人)이라 불렸다. 하마(蝦蟆) 역시 두꺼비라는 뜻이다.

 

‘유해희섬(劉海戱蟾)’은 ‘유해가 두꺼비와 장난을 친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그림으로 그려 길상화(吉祥畵)로 집안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연말 정초에 집안과 점포 안에 이 그림을 걸고 새해에 많은 재물과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윤덕희 <선인도(仙人圖)>, 지본수묵, 75.7 x 49.5cm, 국립중앙박물관]

 

어디론가 가기 위하여 하마선인이 두꺼비를 타고 있는 모습의 그림은 기섬도(騎蟾圖)라고 부른다. 조선 전기에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지낸 이정(李楨, 1512 ~ 1571)의 그림이 전한다.

 

[이정(李楨) <기섬도(騎蟾圖)>, 지본수묵, 30.0 x 23.9cm, 이화여대박물관]

 

기섬도(騎蟾圖)와는 반대로 하마선인이 두꺼비를 들쳐 업고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의 선인도해도(仙人渡海圖)도 있다. 달마가 갈대를 꺾어 타고 강을 건넜다는 절로도강(折蘆渡江)의 고사를 떠오르게 하는 이 그림은 조선 후기에 도석인물화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이 그렸다.

 

[<심사정필 선인도해도(仙人渡海圖)>, 지본담채, 22.9 x 15.7cm, 국립중앙박물관]

 

하마선인이 데리고 다니는 세발 두꺼비는 가끔 어디론가 도망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때로는 우물 속으로 숨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 하마선인은 긴 끈에 쇠돈을 달아 흔들어서 우물 속 두꺼비를 밖으로 꾀어냈다고 한다.

 

[심사정 <하마선인도>, 견본담채, 22.9 x 15.7cm, 간송미술관]

 

그림은 얼핏 하마선인이 끈에 단 동전으로 두꺼비를 낚아 올리거나 희롱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하마선인의 표정을 보면 잔뜩 화가 난 표정 같다. 어쩌면 심사정은 두꺼비를 동전으로 낚아 올린 사실에만 그치지 않고 자꾸 도망 다니는 두꺼비를 꾸짖는 하마선인의 모습까지 그리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그림이 더 해학적으로 보인다.

 

 

참고 및 인용 :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중국인물사전(한국인문고전연구소),

'우리 옛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 그림  (0) 2022.01.31
바다 위의 왕양명  (0) 2022.01.28
김홍도 남해관음도  (0) 2022.01.22
유운홍 풍속도  (0) 2022.01.04
김알지의 탄생설화 그림  (0) 2021.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