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236

정조의 현륭원 행차 - 화성능행도 2

성묘 전배를 마친 정조는 다시 화성 행궁으로 돌아와 문무과 별시(別試)를 거행하였다. 윤 2월 11일 진시(辰時 : 아침 7 ~ 9시)에 융복을 입은 정조가 화성 행궁의 별당(別堂)인 낙남헌(洛南軒)에 친림하여, 어머니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는 ‘근상천천세수부(謹上千千歲賦)’를 문과 시제(試題)로 내렸다. 이어서 무과에 응시한 인물들을 하나씩 불러 활을 쏘게 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쯤에 과거의 급제자 명단을 발표하는 의식인 방방의(放榜儀)가 거행되었다. 이 날 별시의 문과에 급제한 사람은 5명, 무과에 급제한 사람은 56명이었다. 급제자에게는 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인 홍패(紅牌)와 사화(賜花), 사주(賜酒), 관대(冠帶) 등이 하사되었다. 문무과의 장원이라 할 갑과(甲科)에는 각 1인이 선발되었는데, ..

우리 옛 그림 2021.09.25

정조의 현륭원 행차 - 화성능행도 1

정조가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행차하여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에 들리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던 일은 익히 잘 알려진 일이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9일 이른 아침에 1800명에 가까운 배종(陪從) 인원과 함께 창덕궁을 떠나 화성으로 출발하였고, 첫날은 시흥행궁에서 묵은 뒤 이튿날 저녁에 화성행궁에 도착하였다. 정조는 화성에 머무르는 동안 향교를 참배하고 별시(別試)를 거행했으며, 현륭원에서 제사하고, 군사훈련을 지휘한 뒤 어머니를 위한 회갑연을 베풀고 15일 화성을 떠나 16일에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이 8일간의 행차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의궤의 글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고, 주요 예식의 ..

우리 옛 그림 2021.09.24

환유첩(宦遊帖) 4

안의현(安義縣)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옛 행정구역이다. 원래의 이름은 안음(安陰)이었으나, 영조43년인 1767년에 안음현에서 안의현으로 바뀌었다. 1767년 이웃 산음현(山陰縣)에서 일곱 살 난 아이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여 지명을 산청현(山淸縣)으로 고쳤는데, 이때에 즈음하여 안음현도 ‘음(陰)’자를 ‘의(義)’자로 바꾼 것이다. 읍치(邑治)는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일대에 해당된다. 함양군의 안의면, 서상면, 서하면과 거창군의 마리면, 북상면, 위천면이 관할 지역이었다. 소백산맥의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여러 갈래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전라도와 경계에 있는 군현이다. 안의현도 조선시대에 한 차례 곡절을 겪었다. 1728년 무신년(戊申年)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 경상도..

우리 옛 그림 2021.09.13

환유첩(宦遊帖) 3

홍기주는 다시 또 8개월 만에 충청도의 온양(溫陽)으로 옮겨갔다. 홍기주가 무능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수령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서야 고을이 제대로 다스려질 수도 없고 수령 또한 관리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도 없다. 어쩌면 이런 것이 망해가는 나라의 한 단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산시로 통합되었지만 조선시대 온양군의 읍치는 온양군 읍내동 일대에 있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온양온천 때문에 탕정(湯井)·온수(溫水)·온천(溫泉)·온양(溫陽) 등의 고을 이름이 만들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는 온양온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세조 10년) 3월 초하루에 온양군의 온탕에 거가(車駕)를 머무르셨다. 그러한 지 4일 만에 신천이 홀연 솟아올라 뜰에 가득히 흘러 ..

우리 옛 그림 2021.09.12

환유첩(宦遊帖) 2

홍기주는 다음 해인 1883년에 함경도에서 전라남도 곡성(谷城)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곡성은 북쪽은 전라북도 남원과 순창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구례, 서쪽은 담양, 남으로는 순천, 화순과 접해 있다. 지도에도 보이듯 고을을 둘러싼 많은 산들로 골짜기[谷]로 성(城)을 이룬 산지다. 고을의 동북부와 남쪽에 약간의 평야가 있을 뿐이다. 고을 동쪽을 흐르는 강은 섬진강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역마다 섬진강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남원에서는 '순자강(鶉子江)',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江)',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江)', 그리고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江)' 혹은 섬강(蟾江)으로 각기 다르게 불렀다고 한다. 지도에서도 위의 남원에서 곡성으로 들어오는 물에는 ‘순자강(鶉子江)’으로, 아래쪽 구례 방향..

우리 옛 그림 2021.09.10

환유첩(宦遊帖) 1

1630년 최현(崔晛)에 의해 편찬된 경상도 선산의 읍지인「일선지(一善志)」첫머리에는 성종8년인 1477년에 김종직(金宗直)이 선산부사로 재임 할 때 선산지도에 관해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지(輿地)에 지도가 있음은 매우 오래되었다. 세계에는 세계지도가 있고, 나라에는 국가의 지도가 있으며, 읍(邑)에는 읍의 지도가 있는데 읍지도는 수령에게 매우 긴요한 것이다. 대개 산천의 넓이, 인구의 많고 적음, 경지의 증가와 축소,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읍(邑) 지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화공에게 명하여 산천, 마을, 창고, 관청, 역원 등을 한 폭에 그리게 하고, 인구, 경지, 거리 등을 써넣게 하여 벽에 걸게 하니 읍 전체의 봉역(封域)이 확연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세금을 정하고 거둘 때마다 먼저 그 문적..

우리 옛 그림 2021.09.07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4

개천(价川)은 대동강과 청천강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청천강이 흐르고 남쪽 기슭에는 대동강이 흐른다. 무진대(無盡臺)는 개천군 남쪽 대동강변 절벽에 있던 누각이다. 강변의 벼랑과 주위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명승지였다고 한다. 18세기 초 평안도 성천(成川)의 명기(名妓)로 가무와 시문에 뛰어났던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이 남긴 이라는 시이다. ​秋湖十里繞群巒 : 가을 호수 십리를 여러 산이 둘러싸고 一曲淸歌倚彩欄 : 맑은 노래 한 곡조 부르며 채색 난간에 기대었네. 浩浩臺前流去水 : 누대 앞을 흘러가는 넓고 넓은 강물 終歸大海作波瀾 : 끝내는 큰 바다로 돌아가 파도를 이루리라. 강계(江界)는 평안도 북동부에 있던 군(郡)으로 고구려가 일어난 땅으로 알려져 있다. 강계읍성은 성종 3..

우리 옛 그림 2021.09.05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3

은산은 조선시대 성천도호부에 속했던 현(縣)이다. 은산(殷山)의 담담정(澹澹亭)은 관서8경에까지는 끼지 못한다. 그러나 순조 22년인 1822년에 평안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던 박내겸은 자신의 일기에 은산과 담담정에 대하여 이런 소회를 남겼다. (은산)읍 터는 사면이 토성으로 둘러싸이고 하늘이 갑자기 끊겨 곳곳에 바위가 있는데, 바위 모서리가 모두 일어나 서 있어서 어찌 보면 병풍을 둘러친 것 같고 어찌 보면 책상 같고 붓꽂이 같고 도검 같았다. 여기 저기 동굴이 뚫리고 움푹 파여져 있는 것 또한 기이한 볼거리였다. 저녁에 담담정(澹澹亭)에 올라갔는데 정자는 절벽 위에 있고 절벽 아래는 큰 강으로 둘러싸였다. 강 밖에는 큰 들이 있고 들 밖에는 먼 산들이 손을 잡고 늘어서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

우리 옛 그림 2021.09.04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2

부벽루(浮碧樓)는 평양성(平壤城), 그 중에서도 북성(北城)의 대동강 쪽에 있는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누정으로 꼽혀왔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강 건너로 펼쳐진 들판에 이어 멀리로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 전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부벽루에서 밤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구경은 ‘부벽완월(浮壁玩月)’이라 하여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부벽루는 고구려 광개토왕 때인 393년에 영명사(永明寺)의 부속 건물로 세워졌는데 당시의 이름은 ‘영명루(永明樓)’였다고 한다. 고려 때인 12세기 들어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는 청류벽(淸流壁)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의미의 부벽루(浮碧樓)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 옛 그림 2021.08.31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1

관서(關西)는 예전에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를 합친 평안도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런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려 때 관내도(關內道)라고 불리던 서울·경기 지방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고려시대에 설치된 철령관(鐵鈴關)의 서쪽지방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평안도가 서울·경기 지방의 서쪽이 아닌 북쪽에 있기 때문에 전자 보다는 후자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철령관은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과 지금의 강원도 고산군과 회양군 사이에 있는 해발 685m의 고개인 철령(鐵嶺)에 설치된 관으로, 예전 함경도로부터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조선시대에 평안도는 국경지역인 동시에 중국과 조선의 사신이 오가던 주요 교통로이기도 했다. 한성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에 이른 ..

우리 옛 그림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