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환유첩(宦遊帖) 1

從心所欲 2021. 9. 7. 11:10

1630년 최현(崔晛)에 의해 편찬된 경상도 선산의 읍지인「일선지(一善志)」첫머리에는 성종8년인 1477년에 김종직(金宗直)이 선산부사로 재임 할 때 선산지도에 관해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지(輿地)에 지도가 있음은 매우 오래되었다. 세계에는 세계지도가 있고, 나라에는 국가의 지도가 있으며, 읍(邑)에는 읍의 지도가 있는데 읍지도는 수령에게 매우 긴요한 것이다. 대개 산천의 넓이, 인구의 많고 적음, 경지의 증가와 축소,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읍(邑) 지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화공에게 명하여 산천, 마을, 창고, 관청, 역원 등을 한 폭에 그리게 하고, 인구, 경지, 거리 등을 써넣게 하여 벽에 걸게 하니 읍 전체의 봉역(封域)이 확연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세금을 정하고 거둘 때마다 먼저 그 문적을 보고 다음에 이 지도를 보아 정해 주면 백성들이 조그마한 베품을 입으며, 그 사이에서 자기의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지(輿地) : 땅 덩어리. 대지(大地)
▶봉역(封域) : 원래는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를 봉할 때 하사하는 봉토(封土)의 지경(地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수령이 다스리는 지역을 뜻함.

 

19세기 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군현지도의 필요성을 『목민심서』 호전(戶典)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수령은 취임한지 10일이 지나거든 노숙한 아전으로서 글을 잘하는 자 몇 사람을 불러 그 고을의 지도를 작성케 하되 주척(周尺) 1척의 길이로 10리가 되도록 할 것이다. 가령 그 고을의 남북이 백리요 동서가 80리라면, 지도의 지면의 길이가 10척이요 너비가 8척이 되어야 이에 쓸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읍성을 그리고 다음에 산림, 구릉, 천택(川澤)과 개천의 형세를 더듬어 묘사하고 다음에 촌리(村里)를 그린다. 1백 가(家)가 있는 마을은 △표 1백 개를 그리며(삼각형은 지붕을 본뜬 것이다 - 原註), 10가(家)가 있는 마을은 △표 10개를 그리고 3가(家)가 있는 동네는 △표 3개를 그려 넣는다. 비록 산 아래의 외진 곳에 단지 1가가 있더라도 역시 △표 하나를 그린다. 도로의 구석구석까지도 각기 본래 형태대로 그릴 것이다.
이 지도를 엷은 빛깔로 채색하되 기와집은 푸르게, 초가는 누르게 할 것이며, 산은 초록으로 물은 청색으로 하고 도로는 붉은 벽돌 색을 입힐 것이다. 이를 정당(政堂)의 벽에 걸어 두고 항상 살펴본다면 온 고을 백성들의 주거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할 것이요, 공문서를 띄우거나 사람을 보낼 때에도 그 멀고 가까움과 가고 돌아옴을 모두 손바닥 보듯 할 것이니, 이 지도를 만들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글들을 통해 조선의 수령들은 일찍부터 통치와 행정의 편의를 위하여 자신들이 다스리는 지역의 지도를 만들어 활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 전체 같은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는 지도첩이나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들은 책이나 종이의 크기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용과 상세함에 일정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한 고을에 집중하여 단독으로 작성된 지도는 한 고을을 보다 상세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군현(郡縣)지도는 고을이나 감영의 화공에게 의뢰하여 회화(繪畵) 형태로 그려졌다. 그래서 형태가 다양하고 중앙에서 제작된 지도와는 달리 고을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지명들을 수록하고, 실경으로 표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회화식 지도는 기호식 지도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현상의 전체적인 경관과 분위기, 인상까지도 조망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 지역의 구조와 배치를 확연하게 알려 준다. 또한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생략하고, 강조하거나 알리고 싶은 내용은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지도에 사용되는 기호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의 고을 수령들은 각기 자신의 편의에 따라 용도에 맞는 지도를 제작하여 활용하였다.

 

철종 때 벼슬을 한 홍기주(洪岐周)라는 인물은 자신이 평생 동안 역임한 열네 고을의 지도를 모두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 지도 14장을 묶어 「환유첩(宦遊帖)」이라는 지도첩을 만들어 지금까지 전한다.

 

[「환유첩(宦遊帖)」표지, 37 x 23cm, 국립민속박물관]

 

홍기주는 1829년 태어났으며 거주지가 한성이고 1858년에 정기 식년(式年) 진사시에 3등 5위로 합격했다는 사실 외에는 따로 알려진 정보가 없다. 졸년(卒年)조차 미상이다. 「환유첩(宦遊帖)」에 따르면 그의 첫 번째 도임지는 경상도 용궁(龍宮)이다. 지금의 예천군 용궁면지역이다.

 

[「환유첩(宦遊帖)」中 <용궁지도(龍宮地圖)>,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지도에는 읍치(邑治) 위쪽에 구읍치(舊邑治)가 표시되어 있는데, 원래는 낙동강 지류인 남천(南川) 유역에 있던 읍치를 철종 때 서쪽의 성화천(省火川) 주변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을이 작아서 지도도 간략한 편이다.

삼강서원(三江書院)은 정몽주(鄭夢周), 이황(李滉), 유성룡(柳成龍)의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을해(乙亥) 12월이라는 간기를 통해 1875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환유첩(宦遊帖)」中 <순창지도(淳昌地圖)>,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순창(淳昌)은 전라북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전라남도의 장성, 담양, 곡성과 접하고 있으며 노령산맥 주능선을 경계로 정읍의 동쪽에 있다. 북서부는 노령산맥 말단부의 동사면(東斜面)에 위치하여 험한 산지를 이루고, 동남부는 섬진강의 지류 주변에 분지가 발달하여 서로 대조되는 지형을 이룬다.

 

지도에는 좌부면(左部面) 일대에 동헌과 객사가 그려져 있다. 영조 대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좌부면(左部面)은 관아에서 5리이다. 우부면(右部面)은 관아에서 1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좌부면과 우부면은 각각 좌부방(左部坊)과 우부방(右部坊)으로도 불렸으며, 이는 읍성이 좌우 및 동서 개념에 의하여 분할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 지도에서는 객사가 동헌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건물의 위계를 반영하고 있고 향교는 강 건너 남쪽에 위치해 있다. 동헌 앞에는 연당(蓮塘)이 있다. 좌부면과 우부면은 1914년에 순창면으로 통합되었다.

지도는 1878년인 무인년(戊寅年) 5월에 제작되었다.

 

[「환유첩(宦遊帖)」中 <함흥(咸興)>,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함흥(咸興)은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이지만 오랫동안 여진족이 점거하던 지역이었다. 고려 때인 1107년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한 뒤 이듬해에 함주대도독부를 설치하였으며, 조선시대인 1416년에 함흥부로 승격하였다.

성(城)의 북서쪽에 진산(鎭山)인 319m 높이의 반룡산(盤龍山, )이 있고, 대부분의 지역은 평야지대이다. 함흥의 서쪽을 남류하는 성천강(城川江)과 그 오른쪽에서 역시 남류하는 호련천(瑚璉川)이 합류하면서 퇴적작용이 이루어져 해발 21m 정도의 낮고도 평평한 함흥평야가 만들어졌다.

 

함흥부(咸興府)는 함경도 관찰사가 다스리던 지역이다. 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함흥이 함경도 관찰사가 거처하는 감영과 함께 병영(兵營)이 위치해 있던 까닭이다. 함경도는 지대가 넓어 3병영(三兵營)으로 나누어, 함흥(咸興)의 본병영(本兵營)은 관찰사가 병마절도사를 겸하였고, 각각 북청(北靑)에 남병영과 경성(鏡城)에 북병영을 두고 종2품 무관의 병마절도사를 별도로 두었었다.

 

홍기주는 이때 관찰사의 지위는 아니었고, 감영(監營)의 종오품(從五品) 관직인 도사(都事)로 파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사(都事)는 감사(監司: 觀察使, 從二品)를 보필하여 지방관리(地方官吏)의 불법(不法)을 규찰(糾察)하고 과시(科試)를 맡아보았던 관직이다.

지도는 임오(壬午)년인 1882년에 제작되었다.

 

 

참고 및 인용 : 한국민속박물관, 한국문화사 - 관리로서의 유람, 환유(宦遊)와 실경산수화(박은순, 우리역사넷), 한국지명유래집(2010, 국토지리정보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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