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2

從心所欲 2021. 8. 31. 09:08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평양(平壤) 부벽루(浮碧樓)>,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부벽루(浮碧樓)는 평양성(平壤城), 그 중에서도 북성(北城)의 대동강 쪽에 있는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누정으로 꼽혀왔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강 건너로 펼쳐진 들판에 이어 멀리로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 전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부벽루에서 밤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구경은 ‘부벽완월(浮壁玩月)’이라 하여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부벽루는 고구려 광개토왕 때인 393년에 영명사(永明寺)의 부속 건물로 세워졌는데 당시의 이름은 ‘영명루(永明樓)’였다고 한다. 고려 때인 12세기 들어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는 청류벽(淸流壁)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의미의 부벽루(浮碧樓)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림에서 부벽루 아래 대동강 안에 보이는 섬이 능라도(綾羅島)이다. 계단 옆으로 건물들이 여럿 보이는 곳이 영명사(永明寺) 구역이고, 그 앞의 성문이 북성의 남쪽 문인 전금문(轉錦門)이다. 부벽루 뒤편 성벽 안에 있는 산이 모란봉이고,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9시 방향 건너편에 을밀대(乙密臺)가 있다.

 

[<평양성도(平壤城圖)> 10폭 병풍 中 북성(北城)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사절정(四節亭)>,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북도 향산]

 

사절정(四節亭)은 평안북도 향산군의 묘향산 기슭에 있던 정각이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합각지붕을 한 아담한 정각이다. 여기에 오르면 조산동에서 흐르는 강물, 목야봉(目野峯)에 비끼는 황홀한 저녁노을, 비단필로 감싼 듯한 목야봉의 푸른 숲, 묘향산의 높은 봉우리에 솟아오르는 둥근 달의 네 가지 절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남도 성천]

 

강선루(降仙樓)는 평안남도 성천군에 있던 조선시대의 성천객사(成川客舍) 동명관(東明館)의 북쪽 누각이다. 임진왜란 때 세자이던 광해군이 이곳에 묘사(廟祠)를 지어 난을 피하고, 왕위에 오른 뒤에 강선루를 지었다고 한다. 丁자형 31칸의 대규모 건물로 한번에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여서 '해동 제1루'라 불리기도 했다. 중국 사신을 맞는 연회장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림에는 강쪽으로 자리 잡은 강선루와 함께 그 오른 편에 성천객사(成川客舍)가 함께 그려져 있다. 강선루 앞을 흐르는 강은 대동강의 제1지류인 비류강(沸流江)이다. 강 건너편에는 성천십이봉 또는 무산십이봉이라 부르는 2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선 절경이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이곳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비류강의 맑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강선루(降仙樓)라 이름 지었다 한다.

 

[일제 강점기 사진, 강선루]

 

예전 건물은 6·25전쟁 중인 1951년에 파괴되었다. 또한 일제가 성천십이봉의 낮은 부위를 폭파시켜 물길을 돌려놓는 바람에 강의 수면이 낮아지고 경치도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향토대백과(2008, 평화문제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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