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겸재 정선 입암도(立巖圖)

從心所欲 2021. 8. 16. 06:46

[<정선필 입암도(鄭敾筆立巖圖)>, 지본수묵, 117.5 x 57.9cm, 국립중앙박물관]

 

우뚝 선 바위.

그림에 정선의 관지는 오른 쪽에 찍힌 겸재(謙齋)라는 도장뿐인데, 위치로 보면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찍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누군가가 후관(後款)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 적은 제시(題詩)의 내용은 이렇다.

 

屹立風濤百丈奇 바람과 파도 속 우뚝 솟은 백장 높이 기이한데
堂堂柱石見於斯 당당한 돌기둥 바로 이곳에서 보는 도다.
今時若有憂天者 지금 만일 하늘이 무너질까 근심하는 이 있다면,
早晩扶傾舍厼誰 조만간에 떠받칠 이 너 아니면 누구인가!

 

제시 끝에는 입암(立巖)이라 적었다.

‘입암(立巖)’을 우리말로 표현 하면 ‘선바위’인데, 이런 ‘선바위’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정선의 생애 기간 중 여행한 곳과 남겨진 여러 작품을 통해 이것을 외금강 동쪽 동해안에 있는 해금강 입석포(立石浦)에 위치한 기암으로 유추하고 있다. 입석포는 지금 북한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고성면 해금강(海金剛)에 있는 포구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그림은 바다에 있는 바위를 그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만일 이 바위가 바다에 있는 것이라면 바위 앞을 지나는 물을 내[川]처럼 그리지는 않았을 듯싶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엽서 속의 해금강 입석 모습이다.

 

[해금강지입석(海金剛之立石), 1922, 서울역사아카이브]

 

정선이 진경을 그릴 때라도 사의(寫意)를 담아 그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진의 바위는 그림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더욱이 바위의 크기가 하늘을 떠받친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형태로 그림 속 바위와 비슷한 바위가 해금강에 있기는 하다. 촉대암(燭臺岩)이다.

 

[해금강촉대암(海金剛燭臺岩), 1922, 서울역사아카이브]

 

우리말로 하면 촛대바위다. 정선이 이 바위를 입암으로 잘못 알았는지도 의문이지만, 만일 그렇더라도 정선이 이 바위를 그렸다면 넘실대는 파도도 함께 그렸을 것이다.

 

정선은 1721년부터 1726년까지 경북 하양(河陽) 현감을 지낸 일이 있다. 그 때 충청도 단양까지 가서 도담삼봉을 그린 일이 있다. 그런 정선이라 주위의 이름 난 명승지도 틈나는 대로 찾았을 듯싶다.

경북 영양(永陽) 반변천의 남이포 맞은편에 입암 또는 선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영양 선바위 : 사진 왼쪽 구석의 바위, 영양관광 사진]

 

그런가하면 울산 태화강 상류에도 선바위가 있다.

 

[울주 선바위, 포토진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의 의견에 딴죽을 걸려는 의도는 없다. 정선의 그림이 영양이나 울주의 선바위를 그린 것이라 주장할만한 근거도 없다. 그냥 의심이 들었을 뿐이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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