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유숙 고사인물도 1

從心所欲 2021. 8. 1. 11:26

유숙(劉淑, 1827 ~ 1873)은 조선 말기에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이다.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여진족의 언어인 만주어를 연구하는 청학(淸學)을 전공하여 당상관에 올랐고, 유숙도 따라서 청학을 전공했으나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 인하여 도화서에 들어가 정6품직인 사과(司果)를 지냈다. 유숙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지도를 받기도 하였는데, 김정희는 유숙의 그림에 대하여 “필치에 속기(俗氣)는 없으나 다만 적윤(積潤)의 의(意)가 모자란다.”고 지적하였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는 말 그대로 옛 고사(故事)를 주제로 한 인물화다. 여기서 말하는 고사란 중국의 고사로, 경서(經書)에 기록되었거나 역사적 사실 또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사인물도는 초상화와 더불어 중국에서 초창기에 유행했던 인물화의 한 형태다.

 

[유숙 「유숙필고사인물도(劉淑筆故事人物圖)」 中 <선동취생도(仙童吹笙圖)>, 지본담채, 114.5 x 47.3cm, 국립중앙박물관]

 

선동(仙童)은 선경(仙境)에 살면서 신선(神仙)의 시중을 드는 동자(童子)를 가리킨다.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 신선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혼자 등장하기도 한다. 김홍도의 그림에도 선동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김홍도 <김홍도필 선동취생도(仙童吹笙圖), 지본담채, 106.7 x 55.1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김홍도필 선록도(仙鹿圖), 지본담채, 131.5 x 57.6cm, 국립중앙박물관]

 

유숙의 <선동취생도(仙童吹笙圖)> 왼쪽 화면에 쓰인 제시는 당나라 시인 왕곡(王轂)의 <취생인(吹笙引)>에서 따온 구절들이다.

 

媧皇遺音寄玉笙 삼황의 여와씨가 옥 생황에 남긴 음률을

雙成傳得何凄淸 여 신선 쌍성이 전하였는데 어찌 그리도 맑은가!

千聲妙盡神僊曲 천 갈래의 소리 묘한 신선의 곡조가 되어

旖旎香風繞指生 나부끼는 향기로운 바람타고 세상을 감싸네.

 

여와(女媧)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황제인 복희, 신농(神農)과 함께 삼황(三皇) 중 하나로 음악의 여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생황(笙簧)이란 악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쌍성(雙成)은 서왕모(西王母)의 시녀이다. 따라서 이 그림에 보이는 인물은 선동이지만 내용은 여와와 생황에 대한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유숙 「유숙필고사인물도(劉淑筆故事人物圖)」 中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지본담채, 114.5 x 47.3cm, 국립중앙박물관]

 

노자(老子)는 도가(道家)의 종조로 추앙받는 반전설적인 인물이다. 춘추시대에 초나라에서 태어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파한 사상가이다. 출관(出關)이라는 것은 주(周)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몸을 숨기기 위해 함곡관(函谷關)을 넘었다는 고사(故事)를 말한다. 이때 관문을 지키던 윤희(尹喜)라는 인물이 “가시기 전에 저에게 선생님의 생각을 남겨 주십시오." 라고 청하자 그 자리에서 오천여 자(字)의 글을 써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후세에 전해져 「노자(老子)」 또는 「도덕경(道德經)」으로 불리는 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노자는 이후 인간이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선인(仙人)이 되었다고 전한다.

‘노자출관(老子出關)’에 대한 이러한 전설은 중국 고사(故事) 인물화의 단골 화제(畫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유숙 「유숙필고사인물도(劉淑筆故事人物圖)」 中 <귀곡선생은거도(鬼谷先生隱居圖)>, 지본담채, 114.5 x 47.3cm, 국립중앙박물관]

 

춘추전국시대 위(衛)나라의 왕후(王詡)는 주양성(周陽城) 청계(清溪)의 귀곡(鬼穀)에서 은거하였기에 귀곡선생(鬼谷先生)으로 불렸다. 그는 천하정세를 분석하여 각국 통치자에게 유세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제자백가의 일파인 종횡가(縱橫家)의 비조(鼻祖)로 알려져 있으며, 도가(道家)와 병가(兵家)의 사상에도 정통했다고 한다. 중국역사상 신비한 인물로 천고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귀곡자(鬼穀子)」가 있다.

 

[유숙 「유숙필고사인물도(劉淑筆故事人物圖)」 中 <지장대취도(知章大醉圖)>, 지본담채, 114.5 x 47.3cm, 국립중앙박물관]

 

하지장(賀知章, 677 ~ 744)은 당나라 초기의 시인이다. 어릴 때부터 문사(文詞)로 이름을 얻었으며, 시와 글뿐 아니라 초서와 예서에도 능했다. 측천무후 때에 장원급제하여 진사가 된 이래,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 예부(禮部) 시랑, 집현전 학사를 거쳐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빈객(賓客)으로 발탁되었다.

그가 태자의 빈객일 때, 훗날 시선(詩仙)이란 칭송을 받게 되는 이백(李白)을 처음 만나 그의 시 <촉도난(蜀道難)>을 읽고는 “그대는 인간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태백성의 정령이 아니겠는가![公非人間人 豈太白星精耶]”라고 하면서 자신의 가죽옷을 벗어 술과 바꾸어 먹고 취하여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하지장은 이백을 현종 임금에게 추천하였다. 그러니까 하지장은 시인 이백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그는 성격이 소탈했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또한 술을 아주 좋아하는 풍류인으로도 이름이 높아 이백과 더불어 ‘취팔선(醉八仙)’으로 불렸다.

두보(杜甫)는 당시에 주호(酒豪)로 소문난 8사람의 취중(醉中) 기행(奇行)과 흥취를 주제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라는 칠언고시를 지었는데, 그 첫 머리에 “하지장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은 배를 탄 듯하고, 눈이 어른거려 우물에 떨어져서도 바닥에서 잔다. [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라고 읊었다. 이 시는 이후 ‘음중팔선도’라는 화제(畫題)로 꾸준히 그려졌다.

 

[김홍도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지본담채, 25.8 x 35.9cm, 삼성미술관 리움]

 

 

참고 및 인용 : 중국인물사전(한국인문고전연구소), 한시작가작품사전(2007, 국학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