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4

從心所欲 2021. 9. 5. 06:25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개천(价川) 무진대(無盡臺)>,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개천(价川)은 대동강과 청천강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청천강이 흐르고 남쪽 기슭에는 대동강이 흐른다. 무진대(無盡臺)는 개천군 남쪽 대동강변 절벽에 있던 누각이다. 강변의 벼랑과 주위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명승지였다고 한다.

18세기 초 평안도 성천(成川)의 명기(名妓)로 가무와 시문에 뛰어났던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이 남긴 <무진대(無盡臺) 개천(价川)>이라는 시이다.

 

​秋湖十里繞群巒 : 가을 호수 십리를 여러 산이 둘러싸고
一曲淸歌倚彩欄 : 맑은 노래 한 곡조 부르며 채색 난간에 기대었네.
浩浩臺前流去水 : 누대 앞을 흘러가는 넓고 넓은 강물
終歸大海作波瀾 : 끝내는 큰 바다로 돌아가 파도를 이루리라.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강계(江界) 인풍루(仁風樓)>,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강계(江界)는 평안도 북동부에 있던 군(郡)으로 고구려가 일어난 땅으로 알려져 있다.

강계읍성은 성종 3년인 1472년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성으로, 인풍루(仁風樓)는 읍성의 서북쪽 장대(將臺)이다. 부사 윤말손(尹末遜)이 1473년에 창건하여 주로 군대의 교련과 사열을 위한 지휘소로 쓰이던 곳이다.

인풍루는 강계 남산의 남쪽 자락이 독로강(禿魯江)과 북천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높은 벼랑 위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다. 숙종 5년인 1679년 화재로 소실되어 1680년에 다시 세웠다. 6․25 전란 때도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북한에서 수리해 놓았다고 한다.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 중 <의주 통군정(統軍亭)>, 지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은 통군정의 겨울 풍경이다.

통군정(統軍亭)은 의주읍성(義州邑城)의 북쪽 장대로 압록강 기슭 삼각산(三角山)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까지 의주성 안에 있던 봉수대의 이름이 ‘통군정’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곳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그대로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군정에 올라서면 아래로는 압록강의 푸른 물 가운데에 점점이 떠 있는 여러 섬들이 굽어보이고, 남쪽으로는 ‘의주금강(義州金剛)’으로 불리는 석숭산(石崇山)과 백마산(白馬山) 일대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절경을 자랑했다고 한다. 강 건너 중국 쪽으로는 멀리 만주벌이 한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김홍도필 관서십경도(傳金弘道筆關西十景圖)’에 그려진 관서십경이 당시대 사람들의 보편적 합의가 이루어진 장소인지는 의문이다. 원래 관서팔경에 꼽히던 선천의 동림폭(東林瀑),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만포의 세검정(洗劍亭) 등은 오히려 이 그림 목록에는 들어있지 않다. 대신 부벽루(浮碧樓), 사절정(四節亭), 담담정(澹澹亭), 황학루(黃鶴樓), 무진대(無盡臺)가 추가되었다.

 

동림폭(東林瀑)은 평안북도 선천군 태봉 남쪽에 있는 폭포이다.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물이 맑고 구슬같이 떨어진다 하여 '옥포(玉浦)'라고도 한다. 높이 5m로 규모는 크지 않으나, 물이 많고, 기암과 반석이 잘 깔려 있어서 생김새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연광정(練光亭)은 평양성의 동쪽 대동강(大同江) 가에 있는 누각이다. 고구려 때 평양성을 건설하면서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인 1111년에 현재의 자리에 다시 정자를 세우고 이름을 '산수정'이라고 했다가, 그 뒤 보수, 재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670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정선 <연광정>, 견본담채, 28.6 x 23.9cm,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장ㅣ그림 상단의 ‘해동제일승 제일필(海東第一勝 第一筆)’, 즉 ‘조선 제일의 명승을 조선 제일의 화가가 그렸다’는 글은 누군가가 나중에 적은 것으로 보인다.]

 

[<(평양명승)대동강을 마주보는 연광정과 종각>, 일제강점기 엽서, 수원광교박물관]

 

세검정(洗劍亭)은 만포진(滿浦鎭)의 압록강 변 벼랑 위에 세워졌던 조선시대 누각으로, 인조 14년인 1636년 박남여 장군이 침략한 청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이곳 아래 압록강 물에 칼을 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자연암반 위에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합각집' 형태로 세워졌는데, 압록강 수면 위 100m 높이여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왜인들에 의해 소각되어 빈터로 남아있던 것을 북한에서 2010년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만포 세검정(洗劍亭),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명칭은 <유벌(뗏목 운반)>이다. 절벽 위의 정자가 유명한 만포진의 세검정이고 그 아래 압록강에 뗏목을 운반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1926년 촬영.]

 

 

참고 및 인용 : 조선향토대백과(2008, 평화문제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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