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236

겸재 정선 입암도(立巖圖)

우뚝 선 바위. 그림에 정선의 관지는 오른 쪽에 찍힌 겸재(謙齋)라는 도장뿐인데, 위치로 보면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찍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누군가가 후관(後款)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 적은 제시(題詩)의 내용은 이렇다. 屹立風濤百丈奇 바람과 파도 속 우뚝 솟은 백장 높이 기이한데 堂堂柱石見於斯 당당한 돌기둥 바로 이곳에서 보는 도다. 今時若有憂天者 지금 만일 하늘이 무너질까 근심하는 이 있다면, 早晩扶傾舍厼誰 조만간에 떠받칠 이 너 아니면 누구인가! 제시 끝에는 입암(立巖)이라 적었다. ‘입암(立巖)’을 우리말로 표현 하면 ‘선바위’인데, 이런 ‘선바위’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정선의 생애 기간 중 여행한 곳과 남겨진 여러 작품을 통해 이것을 외금강 동쪽 동해..

우리 옛 그림 2021.08.16

유숙 고사인물도 2

【唐武后欲造大佛 使天下僧尼 日出一錢 以助其功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불(大佛)을 만들고자 천하의 중들로 하여금 매일 1전(錢)을 내어 그 공사를 돕도록 하였다.】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624 ~ 705)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이다.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황후로, 고종이 사망한 뒤 두 아들을 황제에 즉위시켰다가 모두 폐위시킨 뒤 자신이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로 바꾸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洛陽)로 옮겼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측천무후는 당나라가 대주(大周)의 황제였던 셈이다. 설화에 따르면 고종이 측천무후에게 보살의 아름다움을 지녔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자 측천무후는 기뻐하는 대신 얼굴에 슬픔에 가득해져서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백년이 지나..

우리 옛 그림 2021.08.05

유숙 고사인물도 1

유숙(劉淑, 1827 ~ 1873)은 조선 말기에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이다.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여진족의 언어인 만주어를 연구하는 청학(淸學)을 전공하여 당상관에 올랐고, 유숙도 따라서 청학을 전공했으나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 인하여 도화서에 들어가 정6품직인 사과(司果)를 지냈다. 유숙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지도를 받기도 하였는데, 김정희는 유숙의 그림에 대하여 “필치에 속기(俗氣)는 없으나 다만 적윤(積潤)의 의(意)가 모자란다.”고 지적하였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는 말 그대로 옛 고사(故事)를 주제로 한 인물화다. 여기서 말하는 고사란 중국의 고사로, 경서(經書)에 기록되었거나 역사적 사실 또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사인물도는 초상화와 더불어 중국에서 초창기에..

우리 옛 그림 2021.08.01

여름에 어울리는 정선 그림

당대부터 이름이 높았던 정선의 그림은 전하는 작품 수도 많지만 전하는 형태도 다양하다. 13개의 화첩 외에도 개별 작품으로 전하는 것도 다수이고, 또 수장가들이 모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첩 속에 들어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심사정,정선,최북 합벽첩(合壁帖)」도 그런 경우의 하나다. 이 첩에는 정선의 그림 6점이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더위를 피해 물과 산을 찾아 떠나는 지금처럼 더운 여름에 보면 산과 물의 청량한 기운을 느낄 법한 그림들이 몇 점 있다. 워낙 주목받지 못한 그림들이라 그림 제목도 없지만, 선인들이 즐겼다는 와유(臥遊)를 하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아래 그림들은 제목도 없이 그저 '정선필산수도(鄭敾筆山水圖)'로 전해지는 그림들이다.

우리 옛 그림 2021.07.28

겸재 정선의 단양그림

고서화 전문화랑인 학고재(學古齋)가 2003년에 「구학첩(丘壑帖)」이라는 정선의 화첩을 공개한 일이 있다. 그동안 겸재 정선의 화첩은 36세 때부터 74세 때까지 총 12권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그 가운데 3권만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구학첩(丘壑帖)」은 이 12개의 화첩 명단에 없던 것으로, 말하자면 정선의 13번째 화첩으로 새롭게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화첩 가운데 단양 관련 그림 3점만 공개되고, 이후 첩에 대한 내용이 추가로 소개된 일이 없어 첩의 전체적 내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만 정선의 절친한 벗이었던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의 발문이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봉서정(鳳棲亭)은 옛 단양관아(丹陽官衙)에 있었던 누정이다. 그림의 개울가..

우리 옛 그림 2021.07.24

이방운의 사군산수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2

멀리서 보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물에 비치면 거북 무늬 모양을 띄어 각기 구담(龜潭)과 구담봉(龜潭峯)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곳으로, 역시 단양팔경 가운데 하나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도 이곳을 유람하고 시를 남겼다. 그런가하면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보냈던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 1714 ~ 1759)은 평소에 단양의 산수를 좋아하여 즐겨 찾다가, 부친이 담양 부사로 재직하게 되자 이를 계기로 구담(龜潭)에 정자를 짓고 지냈다. 또한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 ~ 1760) 역시 관찰사와 다툰 뒤 관직을 버리고 평소 좋아하던 단양에 은거하여 시서화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이인상은 구담에 은거하..

우리 옛 그림 2021.07.19

이방운의 사군산수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1

우리나라 전국에는 팔경(八景)이라 이름 붙인 곳이 무려 98곳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관동팔경(關東八景)과 단양팔경(丹陽八景)이다. 관동팔경은 강원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에 있는 8개소의 명승지를 가리키는 것이고, 단양팔경은 충북 제천과 단양을 중심으로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 및 그 지류가 엮어낸 경승을 일컫는 말이다.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 이 지역에 대하여 “영춘(永春), 단양(丹陽), 청풍(淸風), 제천(堤川) 네 고을은 비록 충청도 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나 실은 한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두메 가운데를 흐르는 강의 연안에는 석벽과 반석(盤石)이 많다. 그중에서도 단양이 첫째로서 네 고을 모두 첩첩산중에 있다. 십 리 정도를 이어진 들판도 없지..

우리 옛 그림 2021.07.13

진재봉래도권(眞宰逢萊圖卷)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목록에 작가도 명시되어있지 않은 채 그냥 ‘화첩(畵帖)’으로만 이름이 올라있는 화첩이 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첩의 표지에 「진재봉래도권(眞宰逢萊圖卷)」이라 쓰여 있다. 이것으로만 보면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 ~ 1775)이 그린 금강산그림을 모은 화첩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화첩 표지에는 추사 김정희가 소장했었다는 의미의 ‘완당(阮堂)장(藏)’이라는 글씨까지 쓰여 있다. 박물관에서 아직 이 첩을 들여다볼만한 여가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 화첩이 김윤겸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못 내려서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 화첩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그래서 첩의 표지 글씨가 과연 김정희의 것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다. 화첩의 구성으로 보면 이 첩은..

우리 옛 그림 2021.07.08

정수영 해산첩(海山帖) 4

옥류동(玉流洞)은 외금강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도중의 구간을 이르는데, 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50m 되는 옥류폭포와 넓이가 약 600㎡에 이르는 옥류담이 있다. 비봉폭(飛鳳瀑)은 옥류동의 연주담과 무봉폭포 사이에 있는 폭포로서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이다. 두 그림은 모두 외금강의 구룡폭포(九龍瀑布)를 그린 것이다. 오른쪽 그림에는 ‘웅덩이 옆에서 그렸으니 가까이서 그 세(勢)를 본 것’이라 했고, 왼쪽 그림에는 ‘폭포 동쪽 반석에 앉아 그 세(勢)를 마주 본 것’이라 적었다. 구룡폭포는 너비가 약 4m이고 높이는 약 74m로, 일명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 개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우리 옛 그림 2021.07.04

정수영 해산첩(海山帖) 3

집선봉(集仙峯)은 외금강(外金剛) 안에 있는 기봉(奇峯)의 하나로 금강산(金剛山)에서도 특히 웅장(雄壯)한 산악미(山岳美)를 자랑하는 봉우리이다. 금강산에서도 제일 날카로운 봉우리로 유명하다. 봉우리에 서있는 바위기둥들의 모양이 마치도 신선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것 같다 하여 집선봉(集仙峯)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집선봉의 봉우리는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로 이루어져 나무 한 그루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정수영의 은 집선봉의 북쪽 산줄기를 그린 것이다. 정수영이 나름 최선을 다해 실제 모습과 가깝게 그리려 했겠지만, 지금 사진으로 보는 집선봉(集仙峯)은 정수영의 그림에서 갖게 되는 느낌과는 천양지차다.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없는 북한 화가들의 집선봉 그림들도 이채롭다. 정수영의 그림을 폄훼하려는 ..

우리 옛 그림 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