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김수철 3 - 담채산수

從心所欲 2021. 12. 10. 13:18

서양에 유토피아(Utopia)가 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이다. 그런데 서양의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의 개념이지만 동양의 무릉도원은 ‘어딘가에는 꼭 있을 것’이라 믿어지고 또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념이다.

김수철이 그린 <무릉춘색도(武陵春色圖)>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있다.

 

[김수철 <무릉춘색도(武陵春色圖)>, 지본담채, 150.5 x 45.6㎝ 간송미술관 ㅣ 1862년]

 

種桃隨處武陵春 복숭아나무 심은 곳마다 무릉도원의 봄이거늘

那必雲中去問津 어찌 곡 구름 속으로 들어가 나루터를 묻는가.

相見當年源裏客 그때의 도원(桃源) 속 나그네를 만나보니

多應本分力田人 본분이 응당 농사에 힘쓰는 사람이로세.

 

굳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복숭아나무를 심어놓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속 아래쪽 정자 안에 앉아 산천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이 한가롭다.

제시 끝에 ‘임술년 음력 8월, 보산학사를 위하여 북산(北山)의 그림 한 폭에 제합니다. 자리에 두고 보십시오. 송료음생[壬戌中秋 題北山寫意一幅 爲寶山學士 淸座 松寮唫生]’ 이라고 적혀있다. 송료음생이라는 인물이 보산학사를 위하여 김수철의 그림에 제하였다고 했으니 제시는 김수철이 쓴 것은 아니다. 제시를 쓴 임술(壬戌)년은 1862년으로 추정되어 이 그림은 1862년 또는 그 이전에 그려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담채와 담묵으로 채워진 그림이 마치 현대의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김수철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지본담채, 114 × 46.5㎝, 삼성미술관 리움]

 

그림도 맑고 담백하지만 제발 또한 그에 못지않다.

 

幾回倦釣思歸去 又爲花住一年

몇 번이나 낚시에 진력이나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다시 또 꽃 때문에 한 해를 더 살기로 했네.

 

[<김수철필 산수도(金秀哲筆山水圖)>, 지본담채, 91.5 x 40cm, 국립중앙박물관]

 

[<김수철필 산수도(金秀哲筆山水圖)>, 지본담채, 127.3 x 29.7cm, 국립중앙박물관]

 

두 그림에 적힌 제시가 모두 같다.

 

身忙見畵剛生愧 바쁘게 사는 내가 그림을 보니 자괴감이 생기는데

安得淸閒似畵中 어디서 그림 속과 같은 청한(淸閒)함을 얻겠는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물러 살고 싶어하는 심정이 그림마다 절절하다.

 

[김수철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지본담채, 33.1 x 44cm, 간송미술관]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에서는 <송계한담도>가 “김수철 스타일의 산수화 중에서도 가장 가락 잡힌 세련된 솜씨를 나타냈다. 인물묘사에 나타난 대담한 생략이라든지 장송(長松)들의 지세(枝勢)가 보여주는 풍운은 독보적 경지를 보이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김수철필 산수도(金秀哲筆山水圖)>, 지본담채, 91.5 x 40cm, 국립중앙박물관]

 

[<김수철필 산수도(金秀哲筆山水圖)>, 지본담채, 127.3 x 29.7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그냥 산수도로 이름 지었지만 두 그림은 추경산수도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나무에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여름에 무성했던 푸른빛은 많이 옅어진 반면 화폭은 갈색이 주조를 이룬다.

 

 

참조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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